['아시아대학원'설립 추진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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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의 한국정신문화연구원.세종연구소.한국개발연구원 (KDI) 국제대학원 통합방안에 대해 해당기관은 물론 주변에서 의혹을 제기하는 이유는 우선 통합이유가 분명치 않다는 점에서다.

우선 이들 기관들을 통합할 만한 최소한의 공통분모도 찾기 어렵다.

문 (文).사 (史).철 (哲) 등 한국학의 대표적 연구기관인 정문연, 외교.안보.통일 분야의 민간연구소인 세종연구소, 국제통상 및 경제분야 전문가 양성기관인 KDI국제대학원은 기능과 목적이 현격하게 달라 통합의 당위성을 찾기 어렵다는 것. 또 최근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통폐합처럼 통합효과를 기대할 것이 별로 없다는 점도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다.

정문연의 경우 1년 예산이 89억원에 불과해 몇백억원 단위의 정책연구기관에 비해 정부지원 규모가 미미할 뿐 아니라 이미 자체 구조조정을 마친 상태다.

KDI국제대학원도 공공부문과 민간기업으로부터 위탁받아 교육하고 있어 예산의 상당부분을 등록금으로 채우고 있는 상황. 특히 세종연구소는 5백억원의 기금과 외부 프로젝트 수주로 독자적인 운영을 하고 있어 '이사회 기부채납 결의' 라는 무리한 통합방식은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특히 과거 아태재단에 참여했던 코라손 아키노나 아웅산 수지 등 비학계 인사를 총장 및 이사로 선임하려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관련 기관에서는 더욱 술렁거리고 있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이번 통합에 거명된 기관들이 설립 당시부터 정치적 목적이 개입됐던 곳들이며 그 오명을 벗기 위해 적지 않은 내부 진통을 거쳐 이제 안정적 연구성과들을 내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는 정문연은 유신과 5, 6공 정부가 이데올로기 창출기구로 활용해왔으며 2년전 부설된 '현대사연구소' 는 문민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 정당화 기관이라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한국학 연구.교육의 대표기관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곧 '한국학중앙연구원' 으로 개칭키로 하는 등 순수연구기관으로 서기 위해 노력해왔다.

전두환 (全斗煥) 전대통령의 퇴임을 대비해 50개 기업이 출연한 기금으로 설립된 세종연구소도 89년 6공화국때 국회 결의에 따라 순수민간연구소로 존속하게 됐으며 외교.안보.통일정책 연구분야에 우수한 인적 자원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영삼 (金泳三) 정부의 세계화 이념에 따라 올 3월에 개원한 KDI국제대학원도 세계은행 등에서 추천한 세계적 전문가를 초빙해 강의하면서 이 대학원을 세계적 수준의 '시장경제센터' 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통합에 반대하는 기관들의 움직임도 구체화될 전망이다.

세종연구소는 현재 저지방안을 강구중이다.

이미 전체 교수회의에서 반대키로 결정한 정문연은 인터넷을 통해 반대의사를 전하기로 했다.

KDI국제대학원은 곧 교수회의를 열어 의견을 결집키로 했다.

이에 대해 임혁백 (고려대.정치학) 교수는 "정치적 입김으로 설립된 연구기관은 그 존재와 존립이 항상 정부에도 부담이 됐다" 며 "미국의 연구소들처럼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발전의 초석이 될 것" 이라고 진단했다.

안병욱 (가톨릭대.한국사) 교수는 "개혁을 해나가는데 학문 외적인 것이 개입하면 과거 행태로 돌아가는 것" 이라며 "세종의 집현전처럼 몇백년을 내다보고 자율적 연구기반을 조성해야 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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