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증없어 '클린턴 벗기기' 한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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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동안 잠잠하던 모니카 르윈스키가 케네스 스타 검사측과 '대타협' 을 해 다시 빌 클린턴 대통령의 '난처한 곳' 을 크게 부각하고 있다.

타협의 골격은 ^르윈스키가 대배심 증언에 나서는 대신 면책특권을 받고^증언내용은 "클린턴과의 '성적 관계' 는 있었으나 클린턴이 거짓증언을 하라고 시키지는 않았다" 가 되리라는 것이다.

언뜻 보면 이미 클린턴더러 대배심 증언에 나서라고 소환장을 보낸 스타측이 '클린턴 옥죄기' 에 한 걸음 더 나아간 것 같다.

그러나 '미국 현직대통령 흔들기' 가 그리 간단할 리 없다.

클린턴이 새로운 정치적.법적 곤경에 처한 것은 사실이지만, 상황이 단순히 '클린턴 벗기기' 만으로 끝날지 마침내 '클린턴 끌어내리기' 까지로 치달을지는 그리 쉽게 판단할 일이 아니다.

◇ 르윈스키.스타는 왜 타협했을까 = 스타측이 '후퇴' 했다고 보는 시각이 워싱턴에서는 의외로 강하다.

근거는 르윈스키가 증언하겠다는 내용이 약 5개월 전 르윈스키의 변호사들이 면책의 대가로 요구했던 내용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당시 스타측은 르윈스키로부터 더 '화끈한' 증언을 끌어내기 위해 타협을 거부했는데 결국 같은 선에서 타협한 것은 패배가 아니냐는 얘기다.

반대로 클린턴을 대배심 증언에 끌어내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라는 해석도 일부 없는 것은 아니다.

르윈스키도 증언에 나서기로 한 마당에 피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압박을 클린턴측에 가하자는 의도라는 것이다.

한편 르윈스키는 증언내용에서 새롭게 더 노출할 부분이 없고 면책은 받아 놓았으니 가장 큰 덕을 본 셈이다.

클린턴측은 아직 별 반응이 없으나 다만 마이크 매커리 백악관대변인의 정례브리핑에서 "르윈스키가 있는 그대로 증언한다는데 왜 클린턴에게 불리하겠는가" 라는 도덕군자식의 간단한 논평이 있었다.

◇ 르윈스키가 증언하면 = 스타측이 클린턴에게 두고 있는 혐의는 "했다 안했다" 는 '위증' 과 " (거짓증언을) 시켰다 안 시켰다" 는 '위증교사' 다.

지금까지 알려진 대로 르윈스키가 증언한다면 우선 위증교사 혐의는 벗는 셈이다.

위증교사는 그렇지 않아도 입증하기 매우 어려운 죄다.

더구나 르윈스키가 부정하고 나선다면 이 부분의 이야기는 끝난다.

문제는 위증인데, 르윈스키.클린턴의 주장은 물론 명백히 반대된다.

분명 클린턴은 지난 1월 폴라 존스 사건때 선서증언을 통해 변호사들에게 "르윈스키와의 성관계는 없었다" 고 말했고 르윈스키가 대배심에서 성관계를 증언할 경우에도 위증논란은 있을지언정 또다른 확고한 증거가 없는 한 위증을 증명할 방법이 없게 된다.

더욱이 클린턴은 스캔들이 처음 터졌을 때 TV에 나와 "부적절한 (improper) 관계는 없었다" 고 했다.

굳이 따진다면 '적절한' 관계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TV에 나선 클린턴이든, 스타측에게 타협안을 제시한 르윈스키든, 결국 타협에 응한 스타측이든 형용사.명사 하나하나를 구사할 때마다 나중에 법적으로 책잡히지 않고 도망갈 구멍이 있게끔 전문적인 자문.지식에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서로들 '모호한 부분' 을 나름대로의 목적에 따라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현재까지 알려진 르윈스키 증언내용으론 위증교사는 물론 위증혐의마저 입증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게 대다수 현지 법률전문가들의 의견이다.

◇ 클린턴.스타는 어디까지 갈까 = 법적.정치적.여론적 측면이 다 다르다.

스타는 법적.정치적으로 앞으로도 얼마든지 길게 클린턴을 옥죌 수 있다.

르윈스키 증언이 끝나면 또 다른 증인을 불러 댈 수도 있다.

그러다 상대방의 실수나 전혀 새로운 사실 등 뜻하지 않은 수확이 걸릴 수도 있고, 아닌 말로 힐러리를 증언대에 세우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 자신이 법학교수였으며 일류변호사들의 조언을 받는 클린턴이 이같은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보수파들의 음모' 라는 힐러리의 주장도 맥을 같이한다.

이제까지 여론은 클린턴 편이었다. "경제가 좋은데 개인의 사생활이 무슨 큰 문제냐" 는 것이 다수 의견이었다.

공화당 주도의 의회도 '탄핵' 얘기를 쉽게 까 놓고 드러내지는 못한 채 여론의 눈치를 보고 있는 판이다.

워싱턴 = 김수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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