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집 잘하면 거액 수당 불법 다단계 상조회사 회비 수십억 떼먹고 파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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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서울 화양동에 사는 이모(28)씨는 2006년 8월 유명 인터넷 취업사이트를 통해 S상조에 인턴사원으로 입사했다. 회사 측은 계약제·부금제 상조 상품을 팔면 수당을 받는다고 했다. 판매량에 따라 인턴·사원·주임·계장 등을 거쳐 국장까지 승진할 수 있는 전형적인 다단계 구조였다. 회사는 이씨에게 판매 실적이 뛰어나면 나이와 상관없이 승진할 수 있다고 했다. 본부장에 오른 홍모(28·여)씨가 그런 경우라고 했다.

회사는 약속한 수당은 제대로 지급했다. 이씨는 5개월 동안 10명의 회원을 유치해 650만원을 수당으로 받았다. 이 과도한 수당이 문제였다. 회원 납입금의 75%를 직책수당, 유치수당 등으로 지급한 S상조는 재정난에 허덕였다. 경영진은 부금을 횡령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씨는 불안감을 느껴 입사 5개월 만인 12월 퇴사했지만 S상조는 결국 지난해 9월 파산했다. 이씨가 모집한 10명을 포함한 회원 1만6000명이 납입한 돈 수십 억원은 떼이게 됐다.

서울경찰청은 고수익을 미끼로 불법 다단계 방식으로 상조 상품을 판매한 혐의(방문판매법 위반)로 S상조 대표 김모(46)씨 등 2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인터넷 구직사이트에 채용공고를 내거나 스팸메일을 보내 상조 회원을 모집한 뒤 다시 다단계 판매 방식으로 회원을 재모집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번에 적발된 4개 업체 중 파산한 S상조를 제외한 3곳은 현재 영업 중이다. 이 중 동대문구 신설동에서 이모(53)씨가 운영하는 상조업체는 60대 이상 노인들을 상조 상품 판매원으로 모집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자녀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면 상조 상품에 가입해야 한다”며 상조 회원 모집을 독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업체 역시 회원 납입금의 대부분을 다단계 수당으로 지급해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다는 것이다. 회원들이 상을 당해도 사실상 지급 불능 상태라고 경찰은 전했다. 서울경찰청 정충호 경감은 “상조업체는 규제할 수 있는 법이 없고, 자본금 5000만원만 있으면 누구나 사업이 가능해 부실 업체가 늘어나고 있다”며 “상조업체를 고를 때는 자본이 충분한지, 합법적인 영업을 하는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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