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DSLR, 겉은 복고풍 속은 캠코더급 동영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2년 전만 해도 렌즈교환식 디지털카메라(DSLR)는 동영상을 찍을 수 없었다. 셔터를 누르면 거울(미러)이 ‘철커덕’ 올라가며 사진이 찍히는 디지털 SLR의 구조 자체가 동영상 촬영에 걸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미지센서가 콤팩트 디지털카메라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화질은 좋지만 그만큼 크고 무거웠다. “비싸고 큰 카메라인데 동영상이 왜 안 되느냐”고 주변에서 물을 때마다 DSLR 사용자들은 대꾸하기가 겸연쩍었다.

삼성디지털이미징이 올 초 공개한 ‘NX’와 올림푸스가 최근 예약판매에 들어간 ‘펜 E-P1’은 ‘하이브리드’ 혈통의 대표작이다. 이들 제품은 크기가 작으면서 기존 SLR보다 레인지파인더(RF) 카메라에 가까운 복고풍 디자인을 도입했다. 라이카의 디카는 RF 방식의 필름 카메라 ‘M8’을 그대로 재현한 외형으로 비싼 가격에도 인기가 높다(사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하지만 디카에도 ‘하이브리드’ 바람이 불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DSLR의 화질과 콤팩트 디카의 기능을 두루 갖춘 제품이 잇따라 나온 것이다.

◆디카도 ‘하이브리드’=올림푸스한국은 ‘마이크로포서드’ 시스템을 처음 적용한 신제품 ‘펜E-P1’을 지난주 서울에서 발표했다. DSLR이지만 크기는 콤팩트 디카와 별 차이가 없다. 동영상 촬영도 된다. DSLR과 콤팩트 디카의 장점만을 취한 하이브리드 디카라는 이야기다.

이런 시도가 가능한 건 미러박스를 제거한 덕분이다. 디카는 필름 대신에 이미지센서가 사진을 기록한다. DSLR용 이미지센서는 크기에 따라 필름과 같은 크기(가로 36㎜, 세로 24㎜)의 ‘풀프레임’과 이보다 작은 ‘크롭(crop)’ ‘포서드(3분의 4)’ 등이 쓰인다. 포서드는 면적이 풀프레임의 절반 정도다. 이에 비해 콤팩트나 하이엔드 디카에 들어가는 이미지센서는 대각선 크기가 10㎜ 안팎에 불과하다. 같은 1000만 화소급 이미지센서라 해도 전체 면적이 클수록 한꺼번에 받아들이는 빛의 양이 많아 화질이 뛰어나고 화면에 지글지글 얼룩이 지는 노이즈도 적다. 하지만 이미지센서가 커질수록 카메라도 크고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값도 비싸진다. 이미지센서가 작아지면 콤팩트 디카를 만들 수 있지만 DSLR급의 화질은 기대하기 어렵다.

올림푸스한국의 권명석 영상사업본부장은 “큰 이미지센서를 그대로 쓰면서도 렌즈와 이미지센서 간의 거리를 좁힌 마이크로 포서드 시스템을 개발해 DSLR인데도 본체 두께를 기존 제품의 절반 수준인 35㎜까지 줄였다”고 말했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본체 기준으로 100만원 안팎의 가격대에 출시됐다.

◆복고풍 디자인=올림푸스의 ‘펜 시리즈’는 1959년 출시된 뒤 세계적으로 1700만 대가 팔린 스테디셀러 필름카메라다. 납작한 사각형 모양의 레인지파인더(RF) 제품이다. ‘펜E-P1’은 펜 시리즈의 디자인을 계승했다. 최근 나온 콤팩트 디카 가운데 삼성 ‘WB1000’과 리코 ‘카플리오GR’ 등도 RF카메라의 디자인을 재현했다. 라이카 ‘M8’은 기존 필름카메라와 같은 모양으로 출시한 디카로 600만원을 넘나드는 고가에도 애호가들이 많이 찾는다.

삼성디지털이미징도 3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사진영상기기 전시회 ‘PMA 2009’에서 DSLR용 크롭 이미지센서를 장착한 하이브리드 디카 ‘NX’를 공개했다. 렌즈에서 이미지센서까지의 거리가 25.5㎜에 불과해 언뜻 봐서는 DSLR인지 콤팩트 디카인지 구별이 어려울 정도다. 연내 출시 예정.

◆동영상이 핵심=따지고 보면 하이브리드 제품을 먼저 내놓기 시작한 건 DSLR 업계다. 지난해 8월 일본 니콘은 동영상 촬영이 가능한 첫 DSLR인 ‘D90’을 발표했다. 기기의 구조상 동영상 촬영이 어려웠던 점을 극복했다. 이어 일본 캐논은 풀프레임 DSLR인 ‘5D마크2’에 동영상 기능을 얹었다. 최근 인기를 끄는 100만원 안팎의 보급형 DSLR인 캐논 ‘500D’와 니콘 ‘D5000’은 모두 HD급 해상도(가로 1280픽셀, 세로 720픽셀)에 초당 24장 또는 30장씩으로 구성된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 콤팩트 디카보다 화질이 월등히 좋아 캠코더와 비교해도 처지지 않는다. 렌즈를 갈아 끼워가며 다양한 화면을 구성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크고 무거우면서도 동영상도 못 찍는다’던 DSLR에 대한 아쉬움이 사라진 것이다.

가격비교 사이트 다나와에서 디카를 담당하는 차주경 대리는 “캐논·니콘 같은 업체들의 DSLR로 찍은 동영상은 전문 방송장비 못지않게 화질이 인상적이다. 펜 E-P1도 동영상 촬영 중 빠르게 자동초점(AF)을 조작할 수 있어 쓰임새가 많다”고 말했다.

김창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