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깊이 읽기] 소크라테스 죽인 건 권력이라는 ‘악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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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인저스티스
 브라이언 해리스 지음, 이보경 옮김
열대림,456쪽, 2만3000원

1535년 영국의 전직 대법관인 토머스 모어(『유토피아』의 저자)는 왕(헨리 8세)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은 대가로 처형됐다. 왕의 결혼이 목숨을 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을까. 아니다. 그의 운명을 가른 것은 종교였다. 모어는 교회 위에 서려는 영국왕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법의 정밀함과 예리함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줄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왕의 뜻”이었다.

영국 변호사 브라이언 해리스가 기원전 399년 아테네의 소크라테스 재판부터 1951년 미국 로젠버그 간첩사건 재판까지 세기의 정치범 재판 13건을 소개했다. 저자에 따르면 나치 전범을 단죄한 뉘른베르크 법정은 당시 법률에 정해지지 않았 평화에 대한 범죄와 반인류 범죄를 피고인들에게 소급 적용했다. “형법의 소급적용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큰 반대여론이 나오지 않은” 특별한 재판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소크라테스에 대해서는 “고결한 지성의 소유자였지만 사형선고를 거의 자초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정치란 오직 그 일에 합당한 자들만 통치해야 한다” 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이 아테네의 민주주의의 안정을 깨뜨릴 수 있다는 두려움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밖에 풍부한 자료를 토대로 링컨 암살범, 아나키즘 신봉자 사코와 반제티, 잔다르크의 재판 이야기를 법정드라마를 보여주듯 펼쳐놓았다.

저자가 생각하는 정치범 재판이란 “국가가 자신의 권위를 위협하는 존재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위해 사용하는 장치”다. 그는 “법을 존중한다고 해서 법정을 무비판적으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며 사회는 반대자를 어느 정도까지 용인해야 하는지, 사회를 향한 신념이 테러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불의’를 뜻하는 이 책의 제목에 단순하게 집착하면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의 절반을 놓칠 수도 있다. 저자가 우리에게 선사한 것은 불확실함과 도덕적 모호함이 넘치는 인간의 행동방식을 풍자한, 세밀하고 매력적인 드로잉 화첩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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