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농사짓는 변호사' 신평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농사짓는 변호사' 신평 (申平.41) 씨. 경주시에서 申변호사를 찾으려면 이름을 묻는 대신 "농사짓는 변호사 사무실이 어디냐" 고 물어보는 것이 빠르다. 그는 주변의 지인 (知人) 들이 "왜 농사를 짓느냐" 고 물을 때마다 "나는 농민" 이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申씨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93년 경주로 내려오면서부터. 그는 그해 5월 모 주간지에 발표한 사법부의 구조개혁을 촉구한 글이 문제가 돼 8월 사법부 최초로 법관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이후 복직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처가 (妻家)가 있는 경주로 낙향했다. 申씨는 "낙향이 많은 것을 잃었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내게는 근본적인 삶을 찾도록 해줬다" 고 말한다.

그가 경주시동부동에 사무실을 내고 본격적인 농사일을 시작한 것은 95년 봄. 사정동 집 바로 옆에 위치한 5백여평의 밭에 고추.감자.옥수수 등 갖가지 밭작물을 심었다.

申씨는 주변사람들에게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러 경주에 온 것이 아니라 농사 짓기 위해 내려온 것" 이라고 말할 정도다. 매년 밭작물을 늘여 올해는 배추.상추.콩 등 20여가지가 넘는다.

올해는 특히 건천읍에 있는 논 1천6백여평에 벼를 심을 예정이다. 그래서 요즘 모내기 준비작업을 하느라 바쁘다.

申씨는 "새까만 얼굴을 한 자식들의 건강한 모습을 볼 때마다 경주에 참으로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고향에서의 느낌을 모아 지난 2월에는 에세이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경주에 살다' 라는 제목의 이 책의 부제는 '농사짓는 변호사' . 고향에 대한 느낌과 농사일을 하며 느낀 소감들을 진솔하게 글로 옮겼다.

申씨는 "그 때나 지금이나 93년 재임용 탈락에 대한 미련은 없다" 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의 사법부 개혁에 대한 자신의 주장에 대해서는 변함이 없다는 생각이다.

그는 "관료.계급화를 없애지 않는 한 사법부의 부정부패도 없앨 수 없다" 며 "젊은 판사들보다는 사회적으로 다양한 경험들을 쌓은 신망받는 재야변호사.검사 등이 판사로 임용돼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申변호사는 경북고와 서울법대를 나와 81년 23회 사법시험에 합격, 93년까지 인천지법.대구지법 경주지원.대구지법 판사 등을 역임했었다.

경주 = 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