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창조적 파괴와 시장원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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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얼마전 국민경제교육연구소가 조사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일반국민.경제전문가 및 주한 외국기업인들이 주요 경제문제에 대해 갖는 인식의 차이를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IMF 구제금융을 받게 된 원인에 대해 일반국민과 경제전문가들은 정부정책실패 (일반국민 68%, 경제전문가 44%) 로 보고 있는데 반해 주한 외국기업인들은 대기업의 차입경영 (총 외국기업인 응답자의 60%) 을 들고 있다.

한국의 대외신인도 (International credit rating) 제고방안에 대해 일반국민은 국민절약운동을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제시했으나 경제전문가들과 주한 외국기업인들은 해고 등 구조조정을 들고 있다. 부실 금융기관 정리방안에 대해서는 일반국민은 자체 정상화를 가장 많이 지지했으나 경제전문가들과 주한 외국기업인들은 인수.합병 (M&A) 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보고 있다.

IMF사태 이후 시장경제원리에 입각한 구조조정과 개혁을 해야 한다고 정부관리들이나 정치인들은 계속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 행동은 상반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작은 정부를 지향하기 위해 공무원 감원이 필요한데 아직 뚜렷한 성과가 없다. 인구가 1억2천5백만명인 일본이 1백32만명의 공무원을 갖고 있는데 반해 인구 4천6백만명에 불과한 한국이 93만명의 공무원을 갖고 있다.

약 10만명의 감원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우세하다.국회의원수도 현재의 2백99명을 2백명선으로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국회가 먼저 구조조정과 개혁의지를 보이고 나서 기업에 대해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부실기업에 대해 계속 협조융자라는 이름으로 구제금융을 수백억, 수천억원씩 제공하면 자금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우량기업에 대한 대출재원을 그만큼 빼앗아가는 결과가 된다.

공장가동률이 40% 수준으로 떨어진 국내 자동차업계를 비롯해 많은 제조업체들이 판매부진과 재고과다로 정리해고가 절실해도 정부 당국의 눈치를 보고 근로자들의 반발이 두려워 제대로 정리해고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처럼 기업의 시장진입이나 퇴출이 자유롭고 정리해고가 용이한 기업환경에서 미국 기업들은 90년대초부터 중반에 걸쳐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해 오늘의 번영을 이룩했다.

시장경제원리란 부실한 기업은 주가가 떨어지고 M&A를 당하거나 도산하게 만드는 원리다. 또 발명.기술혁신 등으로 끊임없이 벤처기업과 같은 새로운 기업이 태어나도록 하는것이다.

소비자는 품질이 떨어지고 값만 비싼 제품은 외면하게 돼 마침내 이런 제품의 생산자들은 망하게 되고 가치창출에 기여하지 못하는 기업의 근로자들은 낮은 임금을 받거나 임금삭감을 당하다가 마침내 실직당하고 만다. 이런 한계기업을 정부나 금융기관이 구제금융을 제공해 살리려고 한다면 우리나라의 시장경제원리에 입각한 구조조정이나 경제개혁은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부실기업이 퇴출 (exit)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계열기업의 M&A나 부동산 매각 등을 중심으로 한 자구 (自救) 기회를 주어보고 그것도 안되면 과감하게 퇴출시켜야 경제개혁이나 구조조정이 가능해진다.

월스트리트 저널지는 얼마전 사설에서 8조6천여억원의 금융부채를 안고 있는 기아의 문제해결은 제3자 인수뿐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자체 정상화가 어려운 기업은 퇴출되도록 정책적 유도를 해야 한다. 망해가는 기업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것보다 사업성.수익성.성장성이 더 큰 벤처기업에 대해 창업금융을 해주는 것이 훨씬 더 확실한 구조조정이다.

슘페터는 "시장경제는 끊임없는 창조적 파괴 (creative destruction) 를 통해서 발전하는데 혁신적인 기업가는 반드시 보상받는다" 고 갈파한 적이 있다. 기업가들이 신기술개발.생산공정혁신.수요창조를 통해 이윤창출을 할수 있는 시장경제원리를 제대로 살리는 것이 우리 경제가 사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김동기〈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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