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 안기부 방문]"정치중립" 신신당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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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대중 대통령은 야당시절 '도쿄 (東京) 납치사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북풍 (北風) 공작' 을 겪는 등 안기부 (전신인 중앙정보부 포함) 로부터 탄압과 박해를 받았다. 그런 金대통령이 12일 안기부를 방문, 업무보고를 받았다.

金대통령은 "감회가 크다" 고 말했다.

"납치.사형선고 등 안기부의 용공조작 때문에 별일 다 당했다. 네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는 회한도 토로했다.

金대통령은 "내가 당했던 일을 안기부가 다시 해선 안된다" "완전히 새 출발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대통령으로서 부당한 지시를 하지 않겠다.

부당한 지시가 있으면 여러분도 따르지 말라" 고 했다. 안기부 보고 후 직원들과 오찬을 같이하는 자리에선 "과거 어떤 입장에 있었건 '국민의 정부' 에선 한 식구" 라며 협력을 당부했다.

金대통령은 오찬 후 귀순자 휴대물품.동해안 무장공비 노획물품 등이 진열된 전시장을 관람한 뒤 기념식수를 했다. 안기부 이름은 곧 '국가정보원' 으로 바뀐다.

이에 맞춰 부훈도 '정보는 국력이다' 라는 원훈으로 바뀐다. 金대통령은 이 글이 새겨진 원훈석 제막식을 하면서 뒷면에 새겨진 '대통령 김대중' 이란 글자를 지우도록 이종찬 (李鍾贊) 안기부장에게 지시했다.

이에 앞서 金대통령은 5층 대회의실에서 李부장으로부터 안기부 개혁방안 등 기밀사항 보고를 받고 간부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金대통령은 신건 (辛建) 2차장에게 인권보장 방안을 얘기하라고 했다.

辛차장은 "앞으로 보안법 위반 등의 수사를 할 때 어떤 경우에도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않겠다" 고 다짐했다. 金대통령이 안기부 시.도지부와 시.군조정관이 일선 행정기관을 장악하고, 국정에 개입했던 폐해를 지적하자 李부장은 "대공 (對共) 상 필요한 곳에는 출장소를 설치해 정보수집.사태수습.기관간 협조 노력을 하고 있다" 면서 개선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답변했다.

金대통령은 맺는말을 통해 이렇게 당부했다."안기부는 국민의 마음에 탄식과 걱정을 끼쳤고, 정치적으로는 부정적인 기관으로 보여온 게 사실이다.

이제 안기부는 국가정보원으로 다시 태어난다.경제연구기관 못지않게 정보역량을 강화하라. 여러분은 경제전쟁에서 승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북한을 어떻게 개방시킬지 노심초사하라. 대통령이 대북 (對北) 정책을 세우는데 믿을 수 있도록 보고해 줘야 한다. 국가정보원이 국내에서 군림해서는 안된다.

국가기관과 정보를 공유해 국가위기 원인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과거 안기부장이 정확한 정보를 파악,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면 외환위기는 없었을지 모른다.

나는 야당하면서 정보도 없었지만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정치에서 손을 떼고 침대와 의자를 경제부총리에게 들고 가서 경제를 챙기라고 한 바 있다.

국가정보원은 이제 직언하고 경고해야 한다. 원훈은 참 잘 정했다. 그 한마디 이상 가는 게 없다. 대통령으로서 마지막으로 부탁한다. 완전중립을 지켜달라. "

이상일 기자〈le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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