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범죄재연TV '법정행'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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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TV 범죄재연 프로그램을 법정에 세우기로 한 서울YMCA가 고발센터 (02 - 737 - 0061) 를 설치하고 본격적인 소송 채비에 들어갔다. YMCA측은 30일 전화와 팩스를 통해 학부모와 모방범죄 관련자, 재연과정에서 명예가 훼손된 사람들의 신고를 받아 민사소송을 제기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시민단체가 법정투쟁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택한 데는 프로그램 자체의 유해성에 원인이 있지만, 시청자들의 항의를 묵살해 온 방송사측의 안일한 태도와도 무관하지 않다. 범죄재연 프로들의 모방범죄.선정성 문제가 불거져 방송위원회의 징계와 일반권고가 내려진 직후인 지난달 23일 서울YMCA 본관에서는 학계.방송위원회.시청자.방송사 제작진이 참석한 가운데 공청회가 열렸다. 이날 KBS.SBS 제작진은 조목조목 문제점을 지적하며 파고드는 전문가.시민들의 항의에 "앞으로는 조심하겠다" 는 얘기를 거듭해야 했다.

그런데 이 공청회에 MBC측은 참석하지 않았다. 서울대 문용린 교수는 "MBC의 '경찰청 사람들' 이 가장 문제가 된 프로인데 방송사가 이래도 되는 것이냐" 며 목소리를 높였다. 소송 제기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대두된 것도 이 대목에서다. 중앙대 최윤진 교수는 "시민단체의 문제제기가 일회성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면서 지속적인 시청자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양대 강남준 교수는 "외국의 경우 유해한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소송사례가 많다" 며 "승소한 경우도 적지 않다" 고 밝혔다. 우선 전단을 만들어 배포하고 사례를 접수해 법정으로 가는 것으로 참석자들의 생각이 모였다.

소송형태는 크게 두 가지가 될 전망이다. 하나는 TV에서 본 끔찍한 내용에 잠을 못 이루는 어린이 등의 사례를 모아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를 집단으로 청구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제작진이 범죄를 드라마로 만드는 과정에서 사실과 다르게 묘사해 명예를 훼손당한 당사자나 모방범죄 피해자 등이 개인적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이다.

결국 이 프로그램들의 정당성 여부는 법정에서 판가름날 전망이다. 법률전문가들은 "공개수배한 사람이 설사 진범이더라도 드라마로 만드는 과정에 사실과 다른 내용이 포함되면 배상책임이 주어질 것" 이라고 밝힌다. 이번 사태의 향후 전개는 시청자 주권의 현주소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강주안 기자〈joo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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