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서적 교정일 하는 시각장애인 이경재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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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스스로를 장애인이라고 생각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 시각장애인이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눈' 을 열어주는 일을 하고 있어 화제다. 시각장애인 이경재 (李敬在.42.대구시남구대명동) 씨. 그의 직업은 점자서적 출판 때 오자와 탈자를 바로 잡는 교정사다.

李씨가 점자 교과서 교정을 시작한 것은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2학년이던 81년. 학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 벌써 17년이 됐다. 옆에서 교과서를 읽어주면 점자로 된 대장을 손가락으로 짚어 오.탈자를 가려낸다.

가장 바쁜 시기는 학생들의 교과서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전년 12월에서 2월 사이. 이 시기엔 자정에 작업을 마치기 일쑤다. "겨울방학이라도 쉬어 본적이 없어요. 그러나 내가 책을 만들기 때문에 후배들이 공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저절로 힘이 나지요. " 李씨는 56년 경남의령군지정면에서 4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정상적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세살 때 심한 열병을 앓고 난 뒤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그는 13세 때 단신으로 고향을 떠나 부산맹아학교에 입학했다.

80년 대구대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한 그는 주경야독으로 4년을 마친 뒤 대학원 사회복지학과에 진학, 89년에는 석사학위도 받았다. 李씨는 지난 2년 간 문화체육부가 주관한 점자표기의 통일 작업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해 처음으로 한국점자규정집을 만들어 문체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李씨는 장애인의 복지를 위해서도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다. 92년에는 '시각장애인 아카데미' 를 설립, 힘들게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공부방을 제공하고 맹인신용협동조합의 이사를 맡아 장애인의 자립기반 마련에도 힘을 쏟고 있다.

대구 = 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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