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클리닉] 짜증 잘 내고 산만한 아이, 소아우울증 아닌가 살펴보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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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생이었던 권수가 서서히 변해갔다. 어쩌다 방문을 열어보면 창밖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고, 엄마가 학습지의 ‘학’자만 말해도 짜증을 부렸다. 학원으로부터 권수가 안 왔다는 문자를 받은 엄마는 처음엔 모른 척했지만 여러 번 같은 문자와 전화를 받고는 권수를 나무랐다. 그랬더니 화분을 집어던지며 엄마에게 욕설까지 퍼부었다.

최근 들어 권수는 집중력이 떨어지고 산만한 데다 과격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인터넷을 검색한 엄마와 선생님 모두는 ADHD를 의심하고 클리닉을 찾게 됐다. 면담과 검사 끝에 나온 결론은 ‘우울증’. 권수는 “아이들이 이기적이에요. 공부도 공부지만 자기들끼리 뭉쳐 제가 낄 곳이 없었어요. 그래서 학원 빠지고 전에 다니던 학교 친구들에게 놀러 간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권수의 휴대전화 기록은 거의 강북 친구들과의 통화로 빼곡하다. 권수는 “죽어버릴까도 생각했어요”라며 울었다. 권수는 항우울제 복용과 놀이치료 뒤 밝은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고 지금은 어엿한 중학교 1학년 우등생이 되어 있다.

권수는 소위 ‘가짜 ADHD’였다. 즉 ADHD라는 가면을 쓴 우울이란 뜻이다. 아이들의 우울은 성인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어른은 우울증에 걸리면 만사가 귀찮고 심하면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이들의 경우 산만해지고 짜증을 내거나 충동적으로 변해 ADHD로 착각하게 만든다. 전문의조차도 이 둘을 구분해내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성인 우울의 원인은 생물학적인 면이 강한 반면, 아이들의 우울은 ‘환경적인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권수의 경우처럼 전학 같은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나 친구 관계, 외모, 성적, 학업 스트레스, 부모와의 갈등 등이 원인이다.

처음 필자가 엄마에게 권수가 우울증이라고 했을 때 엄마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어린애가 무슨 우울증인가요”라고 되물었다.

실제로 과거에는 아동은 정서적인 발달이 안 돼 있어 우울증이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현대의학에서는 아동기에도 성인처럼 우울증이 있다는 사실이 검증된 지 오래다. 7세부터 13세 사이의 아동 10명 중 한 명은 어떤 형태로든지 우울증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공부 안 한다고 구박하기 전에 내 아이의 정신건강을 먼저 챙겨주는 것이 부모의 도리가 아닐까.


정찬호(43) 박사

▶신경정신과 전문의·의학박사

▶마음누리/정찬호 학습클리닉 원장

▶중앙대 의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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