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스타일리스트]재즈가수 정말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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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6일 밤9시쯤 대학로 재즈바 '천년동안도' 에선 신관웅 재즈트리오의 공연이 한창이었다. 곧 무릎이 찢어져 너덜거리는 청바지와 넝마 (!) 같은 셔츠를 걸치고 푸른색 선글라스를 낀 긴 머리 처녀가 등장,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 를 부르기 시작했다.

부드럽고 달콤한 아스트루드 질베르토 풍을 예상했지만 웬걸, 걸걸하고 허스키한 음성과 흥에 겨운 열정적인 몸짓이 무대를 휘젓는다.마른 체구답잖게 성량이 두둑하다.

드럼을 치던 김희현씨가 어느새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쳐다본다.무대의 주인공은 재즈가수 정말로 (27) . '말로' 는 눈에 띄려고 일부러 지은 예명 따위가 아니라 '수월 (秀月)' 이란 본명만큼이나 유서깊은 아명 (兒名) 이란다.

그는 한상원.정원영.김광민 등 걸출한 재즈음악인을 배출한 이른바 '버클리 출신' 이다.정확히 말하면 아직 3학기를 남겨둔 휴학생. 경희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95년 "재즈가 하고 싶어 죽겠는데 도무지 재즈가 뭔지 모르겠어서 한번 배워보자고" 보스턴 버클리음악원으로 날아갔다.

한가지씩 필수로 택하는 악기는 보컬 (목소리.악기로 인정함) .전공은 프로페셔널 뮤직. 기보.청음.화성 등을 배우는 1년6개월의 기초과정은 입학시험 성적이 좋아 면제받았다.

말하자면 '월반' 을 한 셈. 처음 1학기가 지나자 등록금의 30%를 지원받는 장학금을 탔다. "미국에선 실전경험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해요. 4년을 꼬박 다니기보다 중간에 자꾸 '딴 짓' 을 하라고 학교에서 권하죠. 공부만 하지 말고 무대에도 서보라는 거예요. " 재작년 휴학을 하고 귀국한 이유다. 그간 '베이직 온 스테이지' '천년동안도' 등 재즈바 무대에 섰다. 홍대앞 소극장 '예' 에선 매달 마지막주 월요일 신관웅밴드와 함께 공연한다.14~15일 정동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장계현 콘서트에 게스트로도 출연한다.

음반녹음도 얼마전 끝내 다음달 출시 예정. 총 12곡 중 리메이크곡이 4곡인데 '이 푸웅진~세상을 만났으니' 로 시작하는 '희망가' 나 '봄날은 간다' 등 좀 뜻밖의 것들이다.

"표현하고 싶은 대로 자유자재로 곡을 해석하고 연주하는 게 재즈잖아요. 제 악기는 목소리니까 어떤 곡이든 부를 수 있죠. " 머릿곡 '돌아와요' 부터 '룸 #616' '회귀' '엘리어트' 등 4곡이 자작곡. 보컬 편곡도 스스로 했다.

대학 3학년이던 93년 제5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그루터기' 라는 작품으로 은상을 수상한 전력답게 그의 작.편곡 실력은 만만치 않다.

올 8월 다시 버클리로 돌아가는 정말로. 그녀는 정말로 생명력이 긴 여가수로 자리를 잡는 것인가.정말로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 그것은 우리 가요계가 좀 허약해 보이는 탓일 게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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