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자살]어미 잃은 침팬지 한달 굶다 뒤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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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스페인에서는 해마다 '고래소동' 이 일어난다.스페인 해안가에 매년 약 4백마리의 고래들이 뭍으로 올라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중 일부 고래는 사람의 손에 의해 구조된 경험이 있는 고래들이기도 하다.이같은 현상은 스페인뿐 아니라 뉴질랜드나 오스트레일리아 해안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스페인 동물학자들은 돌고래들이 정말 '자살의지' 를 가지고 이런 행위를 하는지 아니면 '식욕부진' 같은 일시적인 생리적인 현상으로 인한 것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연구를 진행중이다. 지난 95년 중국내몽고에서는 5백여마리의 염소들이 목동들의 필사적인 저지에도 불구하고 호수로 뛰어들어 집단 자살을 벌인 사건이 일어났다.

평소 물을 싫어하는 염소 두 마리가 깊이 1.5m의 호수로 뛰어들자 다른 염소들도 이들의 뒤를 따른 것. 결국 2백여마리의 염소가 목숨을 잃었다.이밖에도 몇쌍의 쥐를 밀폐된 곳에 집어넣고 음식을 무제한 투입하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던 쥐들이 어느 시점에서부터 절반가량의 쥐가 스트레스를 받아 픽픽 쓰러져 죽는다는 실험결과도 있다. 또 93년 8월 중국 신장지구에서는 수만마리의 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슬처럼 연결돼 강으로 뛰어들어 자살한 적도 있다.

동물도 자살을 한다는 사실은 이제 그리 낯설지 않다.시시 때때로 동물들의 자살소식이 지구촌 곳곳에서 들려오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이같은 원인을 생태계의 오염으로 인한 것으로 분석하기도 하고 동물들의 종족보전을 위한 도태현상으로 풀이하기도 한다.하지만 뚜렷한 연구결과는 전무한 상태. '침팬지박사' 로 불리는 영국의 제인 구덜박사가 아프리카 침팬지 보호구역에서 관찰한 사건은 마치 인간의 자살과 유사해 흥미를 자아낸다.

플로라는 어미 침팬지가 목숨을 잃자 아들 침팬지 피피가 심한 우울증 증세를 보이다 결국 한달만에 어미 뒤를 따라 죽었다.식음을 전폐한 채 죽은 어미곁을 떠나지 못하다 결국 죽고만 것. 학자들은 침팬지와 원숭이등 유인원류는 어미나 짝을 잃었을 때 약 20%정도가 심한 우울증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고 보고되고 있는데 이런 통계수치는 사람의 경우와 거의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국립아동보건과 인간성장연구소 스테판 수오미박사는 "인간의 우울증이 경우에 따라 자살로 이어지는 점을 감안하면 동물에게도 우울증이 있는 이상 자살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고 말한다.우울증으로 인한 자살현상 외에 동물에게는 또다른 독특한 자살행위가 있다.

소위 전체를 위해 개체를 희생하는 '이타적 (利他的) 자살' . 다람쥐떼 사이에 갑자기 독수리나 매 등이 나타나면 다람쥐중 한마리가 큰 소리를 질러 동료들은 도망가게 하고 자신은 포식자에게 희생을 당하기도 한다.

또 두더지가 기생충에 감염되면 공동묘지에 해당하는 굴로 들어가 죽음을 기다린다.이때 그 두더지는 먹이를 줘도 먹지 않고 순순히 죽음을 택하는 것이다.

동물전문가들은 대부분 이같은 동물자살이 동물들의 다른 행동패턴과 마찬가지로 자연에 의해 진화하게 된 본능적인 행동양식으로 여기고 있다.일부에서는 침팬지 등 영장류의 자살에 대해 다른 생리적인 요인이나 중증의 우울증에서 나타나는 잘못된 부작용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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