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외환위기 특감서 밝혀진 것]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감사원은 우리가 겪는 외환위기를 인재 (人災) 로 규정했다.감사원은 10일 외환위기에 대한 특감결과를 발표하면서 강경식 (姜慶植) 전부총리와 김인호 (金仁浩) 전경제수석을 검찰에 수사의뢰하는 등 경제정책 관련자 21명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그러면서 감사원은 "관계책임자들의 변명에도 일단 일리가 있다고 판단되나, 감사결과 그 대처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이 발견됐다" 고 밝혔다.감사원은 고비용.저효율에 의한 경쟁력 약화와 이에 따른 무역수지적자의 누적, 대기업의 방만한 차입경영 등 위기의 원인 (遠因) 이 많은 것은 인정하지만 이같은 위기의 원인과 징후를 일찍 감지하고 대처했더라면 이렇게 고통스럽지 않을 수 있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감사결과 외환위기에 대한 경고는 여러차례 있었으나 수뇌부의 감지기능은 마비돼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한국은행이 95년 이후 20회에 걸쳐 외환위기를 경고하는 보고서를 냈고, 삼성경제연구소 등 민간경제연구소도 수차례 외환위기 경보를 울렸으나 姜전부총리 등 경제정책의 수뇌부는 이를 묵살했다는 것. 정작 대통령이 심각성을 인지한 것은 이미 관직을 떠나 국민신당에 가있던 홍재형 (洪在馨) 전부총리가 전화를 했기 때문이다.

姜전부총리와 金전수석은 대통령이 IMF 구제금융 신청의 불가피성을 인식했다는 사실을 알고서야 뒤늦게 14일 대통령에게 "협의해 보겠다" 고 보고했다.그러나 姜전부총리는 16일 비밀리에 방한한 미셸 캉드쉬 IMF총재에게 외환보유고 유지가 가능한 것처럼 상황을 왜곡해 설명하면서 "국회에 계류중인 금융개혁법의 통과를 도와달라" 는 엉뚱한 부탁을 했다.

姜전부총리는 거꾸로 환율방어를 위해 보유외환을 무더기로 팔도록 지시, 그 바람에 IMF 구제금융 신청 당일 가용외환 보유액이 1백27억달러로 고갈됐다.위기의 원인들에 대해서도 재경원 등 관계부처는 무관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무역수지적자가 계속되는데도 불구하고 환율을 조정하지 않아 적자가 누적됐다.

종금사를 무더기로 허가해주고서는 감독을 소홀히 해 종금사들은 단기외채를 끌어들여 동남아 등에 장기로 빌려주는 위험한 돈놀이를 계속하는 것을 방치했다.더욱이 재경원은 국경없이 넘나드는 역외금융의 규모가 얼마인지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재경원 간부들은 종금사로부터 검은 돈을 받아 챙긴 것도 드러나 '잿밥에 눈 먼' 행정의 파행을 확인시켜줬다.보다 민감한 국내문제였던 기아와 한보의 처리는 경제외적 변수인 정치적 고려로 갈팡질팡, 기업의 연쇄부도 - 은행의 부실화 - 대외신인도의 하락 등 악순환을 초래했다.

그러나 이같은 감사결과는 외환위기의 근.원인을 밝힌 수준에 불과하다.그 과정에서 어떤 정치적 외압이나 금품수수가 오갔는지는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한 추가조사와 실질적인 처벌은 검찰의 손으로 넘어갔다.감사원이 지닌 조사권한의 한계로 밝혀지지 않은 비리들이 적지않을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검찰의 수사는 또다른 차원의 외환위기 규명과 문책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오병상·채병건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