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오 교사 '옛이야기 보따리' 10권 완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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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얘들아 이 이야기부터 들어보렴. 옛날 이야기가 어떻게 생긴 줄 아니. 옛날에 어떤 사람이 도끼를 메고 큰 산에 들어가 긴 나무를 찍어 긴 장대를 만들었지. 긴 장대 끝에 고소한 깻묵을 매달았는데 그 깻묵이 바로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가 됐단다.' 대구시 감천 초등학교 6학년 3반 교실에서는 이처럼 매일 한번씩 구수한 옛날 이야기가 흘러 나온다.이야기를 들려주는 주인공은 담임인 서정오 선생님 (43) .전국을 돌며 전래 동화를 채록해 쉬운 입말 (구어체) 로 바꾸는 작업을 4년째 해오고 있는 동화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우리 옛 이야기는 원래 말로 해야 감칠 맛이 살아난다" 며 "민족 특유의 감정이 그대로 배어있는 말과 이야기가 사라져 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고 강조했다.그래서 방학이면 녹음기를 들고 산간 벽지를 돌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촌로들의 질박한 사투리로 담았다.

그동안 수집한 옛 이야기 1백여 편을 주제별로 묶어 '옛이야기 보따리' 라는 10권짜리 시리즈로 완간했다 (보리刊) .무서운 이야기를 묶은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 , 배꼽 빠지게 우스운 이야기를 담은 '박박 바가지' , 오순도순 함께 사는 사람과 동물 이야기를 실은 '호랑이 뱃속 구경' 등 분류도 재미있다.

별명이 '이야기 선생님' 인 서씨는 교편을 잡은 20년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그러다 보니 밑천이 달리더라나. 새로운 얘깃거리를 찾다 보니 자연스레 전래 동화 수집 작업으로 이어졌다.

이제는 반 아이들이 첫번째 독자가 됐다.찾아낸 이야기를 책으로 쓰기 전에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반응을 봐가며 글을 고치고 다듬는다.흥겨운 피리 가락으로 호랑이를 물리친 이야기며 메기와 가자미의 싸움으로 바닷속 물고기들의 생김새가 바뀌었다는 이야기 등에서 입말의 재미를 한껏 살릴 수 있었던 것도 아이들 덕분이라고 한다.

'옛이야기 보따리' 시리즈는 마주 앉은 자녀를 대하듯 말투가 아주 친근하다.서씨는 "어린이들은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다소 어려운 내용도 생각보다 잘 이해한다" 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에도 바쁜 세상에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가 필요할까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른들의 시각에 지나지 않는다" 고 덧붙였다.

대구지역 초등학교 교사 모임인 '옛이야기 연구회' 를 이끌고 있는 그는 "이야기를 더 찾고 입말 연구에도 더욱 힘써 우리 나라 뿐 아니라 다른 나라 옛날 이야기도 구수한 우리 말로 엮어내고 싶다" 고 밝혔다.

오는 22일에는 서울대 동문회관에서 옛날 이야기에 관심있는 독자를 모아놓고 '입말로 아이들에게 동화 들려주기' 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가진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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