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무게' 담을 청와대대변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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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새 정부가 출범했다.

이제부터 필요한 것은 머리와 입이다.

金대통령이 박식하고 주변의 전문가들 말에 귀를 기울인다 하니 지도자의 머리를 걱정할 일은 없기를 바란다.

남은 것은 입이다.

대기업정책과 관련해 대통령당선자 시절의 발언이 혼선을 빚은 바 있다.

지도자의 진의와 상관없이 오해가 생겼다 해서 주변 잘못으로 돌리기에는 파장이 엄청나다.

요즘처럼 온나라가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따라 동요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대통령이 입을 여는 일은 극히 계산된 경우에 국한해야 마땅하다.

나머지는 청와대대변인의 몫이다.

대변인이 제 역할을 할 때 오히려 대통령이나 각료들이 무게 실린 메시지를 전할 기회가 마련된다.

신임 청와대대변인이 미국처럼 브리핑을 정례화하겠다니 지켜볼 일이다.

정례브리핑에는 엄청난 사전작업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각 부처간에 입맞추기가 필수다.

물론 국정전반에 대한 대변인 자신의 깊은 이해가 요구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미국에서도 백악관은 물론이고 국무부.국방부에서 매일 정례브리핑을 한다.

우리의 경우 청와대부터 정례브리핑을 실시한다고 하니 대변인의 입에 실리는 무게는 더욱 무거울 수밖에 없다.

차제에 청와대대변인의 역할을 새롭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미국백악관의 마이클 매커리 대변인은 44세. 클린턴정부 출범 직후 국무부대변인을 맡았다가 4년 전 현직으로 옮겼다.

14세때부터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의 대선캠페인에서 자원봉사를 했고 여러 의원들의 선거전에서 입노릇을 한 경험이 있다. 매커리가 워싱턴언론가에서 신임을 얻는 이유는 대통령에 대한 접근 (access) , 말의 권위 (authority) , 독자적인 무게 (autonomy) 를 겸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클린턴대통령이 섹스스캔들로 시달릴 때 매커리의 유머 섞인 느긋한 답변자세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살리는 데 크게 기여한다.

미국의 정책을 나라 안팎에 알리고 대통령의 입장을 대변하는 데 백악관대변인만한 자리가 없다.

행정경험이 부족한 이들이 새 정부의 주요공직을 맡은 마당에 정책의 신뢰성을 높이려면 입조심이 첫째다.

그리고 집권 초기 국내외에 신뢰의 기반을 다져야 하는 상황에서는 정부의 입을 가급적 한군데로 모으는 것이 바람직하다.

막중한 임무를 수행할 청와대대변인은 야당 정치투사의 구태 (舊態) 를 빨리 벗어 던져야 한다.

말을 가릴 줄 아는 세련미가 새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좌우한다.

길정우〈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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