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은행에 의한 기업 구조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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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은행은 앞으로 30대그룹이 제출해야 하는 모든 재무자료를 토대로 대기업의 구조조정에 직접 개입할 수 있게 됐다.

은행감독원이 대기업의 차입경영구조를 고치겠다는 취지아래 '재무구조개선협정에 관한 지침' 을 각 은행에 시달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별로 적용하지 않던 '주거래은행은 주거래계열의 재무구조 개선을 지도할 수 있다' 는 은행감독원 감독규정의 조항을 적용하겠다는 발상이다.

주거래은행과 기업은 제출된 자료에 입각해 빌린 돈을 어떻게 갚을 것인지 또는 상환을 위해 어떤 계열사나 부동산을 팔아야 하는지 협의한 뒤 특별협약을 맺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동안 정부나 비상경제대책위를 통해 구조조정을 말로 '촉구' 해 왔던 차원에서 이제 은행을 앞세워 신규대출의 중단이나 기존대출의 회수와 같은 실질적인 채찍을 쓰겠다는 의도다.

온나라를 어렵게 만든 외환 및 금융위기의 한 가운데 과다한 차입과 비효율적인 기업경영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 대기업의 구조조정은 필요하다.

특히 바람직한 은행과 기업의 관계를 고려할 때 은행에 의한 기업경영의 감시는 시장경제의 운용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은행을 비롯한 금융시장과 주주가 투자하는 주식시장에 의해 감시받아야 한다.

따라서 주거래은행이 많은 자금을 빌려주는 기업투자의 효율성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며 기본적으로 대출심사가 담보보다 기업의 신용과 경영능력 및 투자의 건전성에 따라 수행돼야 한다.

그렇다면 이번 감독원이 시행하려는 조치는 은행에 의한 경제기능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이론을 제기하기 어렵다.

문제는 왜 이같은 감독규정을 이 시점에서 그것도 아직 은행의 경영주체가 제대로 확립 되지 않은 상황에서 강조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혹시 은행의 경영과 인사를 새 정부아래서도 계속 정부의 영향권 밑에 두고 은행을 이용해 대기업의 개혁에 직접 개입하려는 의도는 아닐까. 그렇다면 그동안 차기 정부의 경제책임자들이 누차 강조해온 시장에 의한 기업자율의 구조조정원칙과는 맞지 않는다.

이같은 의심을 해소시키려면 은행부터 우선 경영의 주체를 확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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