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의 정치인]장재식 국민회의 의원…'換亂'내다본 경제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지금은 달라졌지만 한때 국민회의의 '유일한' 재경통 소리를 듣던 인물이 장재식 (張在植) 의원이다.

지금도 비상경제대책위에서 국민회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비대위 당선자측 대표인 김용환 (金龍煥) 자민련부총재와는 서울대 법대.고시행정과 (7회) 동기생. 법대 졸업 후 국세청에 들어가 징세.직세.간세국장, 서울지방청장을 거쳐 30대에 최연소 차장까지 지내는 등 호남 출신으로서는 이례적인 경력을 쌓았다.

하지만 '출신 핸디캡' 때문에 동기생인 김용환부총재가 재무장관 등으로 승승장구한 것에는 못미친다.

대신 학문쪽에 관심을 돌렸고, 중앙대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주택은행장을 지낸 뒤 하버드대 조세연구과정.관료로서의 경험 등을 살려 조세문제연구소를 설립했다.

조세.환율.예산.금융을 두루 섭렵한 인물로 꼽히는 그는 10여년간 서울대 법대에서 강의를 맡았다.

실무와 이론을 겸한 그의 강의는 인기를 끌었다.

張의원 본인 외에도 친형 장영식씨가 뉴욕주립대 경제학 교수로 있고 두 사람의 아들.사위 등 10여명이 경제.경영.사회학.철학 교수로 있는 등 집안 자체가 '학맥' 을 형성하고 있다.

92년 정치에 입문하며 바로 제1야당의 정책위의장에 임명될 만큼 金당선자의 신임도 두텁다.

張의원은 지금도 세금과 경제를 연구하느라 별도로 오피스텔을 하나 얻어두고 있다.

한편으로는 주한 외국 대사들과 만나 한국 경제를 설명하는가 하면 외국 금융기관 관계자들과의 접촉도 활발하다.

그는 96년 국정감사와 상임위에서 외환위기를 경고했다.

"무역수지가 2백달러 이상 적자가 나는데 이러면 국가부도 사태가 온다" 며 대책을 따졌다.

당시로서는 이해못할 환율인상을 주장했던 것.

- 그때 (96년) 환란 (換亂) 가능성을 지적한 이유는.

"당시 환율이 달러당 8백40원대였는데 정상적으로는 1천50원대가 돼야 한다고 봤다.

그래야 수출도 살아나고. 그런데 모두들 나를 미친 사람 취급했다."

- 기업의 자금난이 심각하다.

"20%이상 금리가 6개월 더 가면 한국 기업은 다 쓰러진다.

대책을 서두르겠다."

- 한은차입이나 공채발행을 통해 경기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적자재정은 조심해야 한다.

국민총생산 (GNP) 의 3%까지는 재정적자를 내도 된다지만 인플레로 서민경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

1~2%선은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 바람직한 세법 개정 방향은.

"세수 (稅收)가 늘 수 있는 정책을 짜야 한다.

법인세.소득세.근소세.부가세의 인하가 필요하다."

김현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