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교의 어색한 꽃단장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11호 34면

기차를 타면 언제나 마음이 설렌다. 익숙지 않은 공간으로의 여행이라면 더욱 좋겠지만 그 목적이 출장이라도 굳이 상관은 없다. 서울을 출발해 푸른 물결 반짝이는 한강철교를 건너면 비로소 자유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만남들을 기대하곤 한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또 어떠한가…. 멀리 서울의 불빛이 한강 위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노라면 또다시 엄마 품에 돌아온 듯 푸근함과 편안함에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된다.

이렇듯 한강은 늘 우리 곁에 삶의 시작과 마지막 속에서 많은 사연과 마음을 담고 무수한 표정으로 새로운 만남들을 준비하고 기다려왔다. 언젠가 어느 일간지에서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를 묻는 설문조사가 있었는데 단연 1위가 한강이었던 걸 기억한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풋풋한 이른 새벽 강 풍경과 황금빛 노을 속으로 스며드는 강변의 모습 그리고 어둠에 반짝이는 아름다운 빛의 무리들….

두 해 전 가을 사무실을 이전하며 아름다운 한강을 내 책상에서 매일 만나는 행운을 갖게 되었다. 쏟아지는 햇살을 다채로운 모습으로 받아들이며 시간과 계절을 만나게 해주던 한강. 어둠이 강 위로 조금씩 내려앉으면 길게 꼬리를 물어가는 차량의 빛 행렬에 만남의 설렘을 그려주던 한강.

그런데 며칠 전 어둠이 짙게 내린 창밖을 무심코 바라보다 새롭게 변해버린 내 앞의 한강다리를 보고 깜짝 놀라 내 눈을 의심하게 되었다. ‘잘못 보았나, 아니 한남대교가 맞는데…’라며 몇 차례 중얼거릴 때 자랑스럽게 꽃단장을 한 화려한 그가 목을 길게 빼고 서서 나를 어색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동안의 못생겼던 모습을 보상이라도 받은 듯…. 누군가는 이야기하겠지. ‘친환경 신소재의 미래지향적 감성의 빛으로 표현했노라’고.

모두에게 두근거림과 설렘을 주는 파리의 센강 위로 흐르는 우아한 빛들은 여간해선 자신의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두운 건 절대 아니다. 배를 타고 여러 개의 다리들을 바라보며 가까이 다가서려 하면 그제서야 수줍은 듯 제 모습을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보여주기 시작한다. 비가 내리거나 안개라도 피어오른다면 그 빛은 더욱 신비롭게 마음을 사로잡는다. 강변의 그림 같은 풍경들은 아름다운 빛의 수채화를 그려내 보인다.

노랗고 따스한 빛들이 강물 위로 흩어질 때 사람들은 그 빛을 담으려 마음의 그물을 던지곤 했다. 강요하지 않음의 도도함이랄까. 그 여유와 자유로움을 우리는 아름다운 영상이고 우아한 낭만이라 하였다. 스토리가 있는 여러 개의 이름 있는 다리들도 마찬가지였다. 빛의 표현 방식이나 종류는 한 가지였지만 그들의 표정은 각기 다양했다. 구조적 형태나 고유의 표면색을 이용해 각자의 특징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면서 그저 평범하거나 기능적인 다리들은 어둠 속에 들어가 다른 다리들의 배경이 돼 몇 개의 주요 교량을 중심으로 낮과는 또 다른 그림을 그려주고 있었다. 교량 하나하나의 색은 프랑스 국기를 상징하는 듯한 빛으로 표현돼 그들만의 은근한 자신감과 공간의 위상을 느끼게 해주었다.

한강이 변하고 있다. 600년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변치 않는 모습과 다양한 미래지향적 만남을 약속하는 새로운 장소로서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되새겨야 할 것이 있다. 한강 르네상스의 주제인 ‘회복’의 중심에는 나, 너, 우리가 있다. 잃어버리고 놓쳐버린 시간에 대한 보상으로서의 일방적이고 화려한 치장이 아니라 은근한 멋과 삶의 여유와 낭만을 미래의 꿈으로 엮기 위한 우리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필요한 것이다.

이제는 그만 총천연색의 과장된 빛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한강다운 우리의 빛을 찾아가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미래 빛으로 그려질 한강의 또 다른 우리의 만남이 기다려진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