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삼 칼럼]국정의 '올스타'를 뽑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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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신문철을 들춰보면 YS의 인사는 93년 2월17일 청와대 비서진을 짜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같은 달 22일엔 총리와 감사원장이 내정됐고 26일엔 드디어 24부처의 조각 내용을 발표함으로써 정부 구성을 마무리했다.

지금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 첫 비서실장이 누구였는지, 첫 국무총리는 또 누구였는지 아마도 기억조차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그 첫 인사를 접하며 얼떨떨하고 당황스럽기까지 했던 느낌만은 아직도 남아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YS의 인사는 처음부터 원칙없이 뒤죽박죽이었다.

배고픈 민주계가 있는가 하면 3공에서 6공까지 줄곧 권력의 그늘에서 호의호식해 온 인사도 수두룩했다.

이념적으로도 수구가 있는가 하면 진보도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정파를 망라해 거국내각을 구성한 것도 아니었다.

업무수행능력이나 도덕적인 면에서 볼 때도 "어떻게 저런 사람을"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만한 인사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내 장.차관급이 4명이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줄줄이 물러나야 했다.

YS는 대통령이 되기 전 '인사가 만사' 라며 그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지만 정작 자신의 인사는 세간의 평에 따르면 '망사 (亡事)' 였던 것이다.

실은 그때 그 인사에서 '오늘' 을 짐작했어야 했다.

새 대통령 당선자는 이런 저간의 사정을 반면 (反面) 교사로 삼아 이제부터 고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지금의 나라 상황을 볼 때 축배를 들 겨를이 없다.

더구나 앞으로의 인사를 선거과정의 논공행상이나 계파간의 나눠 먹기식으로 한다면 새 정권의 운명 역시 뻔하고 뻔할 것이다.

지금 새 대통령 당선자에게 필요한 것은 논공행상이나 측근들에 대한 자리 나눠 주기가 아니라 오히려 선거때의 공로자나 측근을 과감히 팽 (烹) 할 수 있는 결단과 안목이다.

이제까지의 선거진용이 오색잡탕임은 누구보다 당선자 그 자신이 잘 알 것이다.

그의 깃발 아래 모인 인사들이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실은 권력의 빵 부스러기를 나눠 받기 위한 것임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당선을 위해 무차별적으로 긁어 모았던 것이 사실이라면 더더욱 그들을 떨쳐버릴 수 있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당선자는 웬만한데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꼬락서니를 보면 가슴이 꽉 막힌다" 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

현재의 심중한 국가 위기상황은 '올스타' 의 선발을 요구하고 있다.

내 편, 네 편이냐를 가릴 때가 아니다.

오직 우리나라에서 그 해당분야에 누가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가졌는가 하는 기준만을 가지고 조각을 해야 한다.

여와 야가 따로 있고 정파가 따로 있을 정도로 우리의 형편이 한가롭지도 않고 인재가 넘쳐나지도 않는다.

또 이번 선거에서 어깨를 겨뤘던 정파들은 단지 이해득실이나 우두머리와의 친분에 따라 패거리를 따로 지은 것일 뿐 이념적으로는 똑같은 '보수' 파들이다.

이질감을 느낄 이유도 별로 없는 것이다.

지금의 경제난국을 헤쳐 나가려면 강도 있는 개혁과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고통의 분담과 그에 대한 이해와 인내도 필요하다.

따라서 어떤 형태, 어떤 수준에서든지 노.사.정의 협약이나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이를 조속히, 그리고 원만히 이뤄내기 위해서도 올스타의 선발과 그 올스타가 이끄는 국정운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YS의 실패는 자신의 장담과 달리 머리를 잘 빌리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새 대통령 당선자는 정말 사심없는 리더십을 발휘해 주어야 한다.

토끼사냥은 끝났으니 이젠 사냥개는 삶아도 좋다.

욕먹을 각오 없이는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취임식이 아니라 퇴임식때 박수를 받을 수 있는 대통령이 되기를 다짐하고 또 다짐해야 한다.

우선 권력의 부스러기를 노려 부나비처럼 모여든 주위의 염치없고 탐욕스런 측근들부터 팽하라. 그리고 유능한 인물을 찾기 위해 고뇌하고 삼고초려 (三顧草廬) 하라. 주어진 69일의 준비기간은 이를 위해서도 긴 시간이 아니다.

유승삼 <중앙m&b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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