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섭의 와/인/토/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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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섭의 와/인/토/크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와인 풍미 곱절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이 너무 비장하고 엄숙해요. 와인이라는 것이 어차피 음식인데, 비장하게 볼일 보나? 왜 그렇게따지고 먹어? 꼬막 먹는 것처럼 가볍게먹으면 되는 건데.”‘와인&안주 프로젝트’에 초대된 사람들 앞에서 허영만 화백이 꺼낸 말이다. 묘하게 긴장됐던 분위기를 이내 밝게 바꿔 준 한 마디였다.
 

허영만 화백이 지금까지 제일 맛있게마신 와인은 홍어와 함께 마신 레드와인이라고 한다. 마신 와인의 이름은 모르지만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분위기가 좋아서 그때의 맛있는 추억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고. 또다시 그 맛을 보고 싶어서 홍어에 와인을 함께 맞추어 보았는데 그 이후에는 그런 맛이 안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런 경험은 독자들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분위기 속에서 마시는 와인은 싸고 비싸고를 떠나 맛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바이어 입장에서 와인의 구매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해외로 와인을 구매하러갈 때 좋은 분위기에서 맛본 와인을 나중에 국내에서 냉정한 마음으로 다시 맛
볼 때 지난번과 다른 와인이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들 때가 있다.와인은 이름 외기가 어려운 술이다. 오죽하면 한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와인의하나인 샤또 딸보(Chateau Talbot)가 이름이 쉬워서 가장 잘 팔린다고 했을까?

허영만 화백은 와인의 이름을 외기 어려워서 와인을 ABC로 등급을 나누어 관리했다고 한다. A는 고급와인이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마시기보다 보관을 하는 와인, B와 C는 일상적으로 마셔도 부담없는와인으로 구분해 놓고 본인 이외의 사람들에게 A등급에는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단다. 애지중지 소장하는 와인이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지는 일.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불상사가 종종 생긴다.해결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좋은 와인이 들어오면 가족과 혹은 친구와 함께 하면서 특별한 날을 만들면 된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상영한 라는 영화가 기억이 난다. 중년의 남성이 결혼 전에 친구와 함께 여행을 떠나면서 벌어지는이야기다. 주인공 마일즈는 샤또 슈발블랑(Chateau Cheval Blanc) 1961년을 딸 수 있는 완벽한 날을 기다리다 깨닫는다. 샤또 슈발블랑 1961년산을 따는 그날이 바로 최고의 날이라는 것을.
 
이렇게 날씨가 따뜻해질 때면 과메기와 함께 했던 뉴질랜드산 실레니 소비뇽블랑(Sileni Sauvignon Blanc)이 떠오른다.상쾌한 풀, 나무 향 등과 함께 어우러지는상큼한 맛이 봄날의 나른함을 달래주고 우리에게 특별한 날을 선사하지 않을까?

김진섭

전 KWS(한국와인협회)
사무차장을 거쳐 현재 코리아 와인 챌린지 심시위원LG상사 트윈와인 마케팅 팀장을 역임하고 있다. 월간 CEO에서 와인 이야기를 연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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