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덫에 걸린 호랑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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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인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의 '메가트렌드 아시아' 는 아시아 예찬론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90년대 들어 아시아가 르네상스를 맞았다고 적고 있다.

나이스비트는 아시아의 발전을 아시아적 시각으로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아시아의 현대화를 서구화로 보는 것은 잘못이며, 아시아적 가치관을 토대로 현대화가 이뤄졌다는 주장이다.

아시아고유방식의 발전을 주장하는 대표적 인물은 싱가포르의 리콴유 (李光耀) 전총리와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모하마드 총리다.

李전총리는 "국가발전에 필요한 것은 기강 (紀綱) 이다.

민주주의가 지나치면 기강이 해이되고 무질서를 낳아 국가발전을 방해한다" 고 주장한다.

마하티르 총리는 "경제개발로 물질적 향상을 도모할 수 있지만, 물질적 부 (富) 를 관리하는 사람이 도덕적으로 바른 가치관을 갖지 않으면 부는 사라져 버린다" 고 경제발전에서 정신적 요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같은 주장은 서구에 대한 아시아의 자부심의 표현이다.

그 속엔 그동안 아시아가 이룩한 경제발전에 대한 긍지가 깔려 있다.

오는 2000년 아시아의 국민총생산 (GNP) 은 유럽연합 (EU) 의 2배, 세계의 3분의1을 차지할 것이라고 나이스비트는 전망한다.

아시아의 눈부신 발전을 서구인들은 경이 (驚異) 롭게 지켜봐 왔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엔 경계와 질시가 자리잡고 있으며, 상황이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되면 언제라도 비판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최근 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금융위기 도미노현상에 대해 서구인들은 기다렸다는 듯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그들은아시아 자본주의를 '권위주의적 자본주의' 로 규정하고, 잘못된 경제발전 모델을 '낡은 장화를 벗어던지듯' 포기하라고 요구한다.

권위주의는 유연성과 개인의 자유보다 합의와 위계적 협력을 더 중시하기 때문에 자유시장경제와는 어울릴 수 없다는 것이다.

또 권위주의는 정실.부패.비능률을 낳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화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를 위해 자본주의는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자본주의를 위해선 민주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구 언론은 아시아 금융위기를 아시아 자본주의 모델의 사망이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한번 덫에 걸린 호랑이는 오랫동안 수모 (受侮) 를 면치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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