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지원이후]고려증권 부도파장…'부실금융기관 파산' IMF태풍 현실로(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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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고려증권의 부도처리는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파산정리의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9개 부실종금사들도 '업무정지' 명령을 내렸지 파산을 방치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고려증권의 부도처리로 '금융기관 도산 불가 (不可)' 의 신화마저 무너진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부실한 금융기관들의 도산이 줄을 이을 전망이다.

일단 금융기관 부도의 금기가 깨진 이상 부실이 많고 자금난이 심한 일부 증권사와 종금사들이 비슷한 처지에 놓이더라도 정부가 나서 도산을 막아주는 일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정경제원도 "다른 부실증권사가 부도에 몰리더라도 정부가 나서지 않겠다" 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정부가 국제통화기금 (IMF) 의 구제금융조건으로 합의한 부실금융기관의 파산정리가 당장 하루만에 현실로 닥쳐온 셈이다.

이번 고려증권의 부도는 한보 이후 계속된 대기업 부도로 부실채권이 늘어난 것이 근본적인 배경이 됐고, 최근 금융권에 불어닥친 최악의 자금경색이 기폭제가 됐다.

우선 부실채권의 증가는 대규모 누적적자로 이어졌고 이같은 경영악화는 결국 해당 금융기관을 자금난으로 내몬다.

고려증권의 경우 지난 9월말 현재 부실채권 규모가 1천8백89억원에 이르고 1천7백68억원의 누적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또 지난 3월 5백67억원이었던 콜자금이 최근에는 4천3백37억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이처럼 초단기자금에 의존하는 자금조달 구조는 금융권에 극심한 자금경색이 벌어지자 순식간에 국내 8위 (약정기준) 의 증권사를 부도에 이르게 만들었다.

고려증권 부도의 결정타가 된 자금경색현상은 이미 다른 증권사와 일부 종금사들의 목줄을 죄고 있다.

최근 자금경색의 진원지는 지난 2일 전격적으로 단행된 9개 종금사에 대한 업무정지다.

정부의 강권으로 마지못해 이들 종금사에 콜자금을 대주던 은행권은 업무정지조치로 졸지에 1조2천억원을 물리고 말았다.

당장 돈을 떼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은행들은 그후 조금이라도 위험하다 싶은 종금사나 자금사정이 어려운 증권사에 대한 돈줄을 끊기 시작했다.

종금사들은 이미 매일 2조원 가까운 돈을 막지 못해 한은의 긴급지원으로 하루를 넘기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고려증권의 경우는 계열사인 고려종금이 업무정지 대상에 포함되면서 부도시기가 더욱 앞당겨졌다.

돈줄이 막힌 고려종금 대신 은행권에서 받아다 넘겨준 콜자금을 업무정지 때문에 돌려받지 못하게 된데다 은행권으로부터 자체 자금조달마저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런 사정은 현재 자금난에 빠진 3~4개 증권사와 7~8개 종금사가 거의 마찬가지다.

고려증권의 부도는 또 은행과 투신사.기업에 연쇄적인 파장을 미치고 있다.

고려증권의 보증으로 발행된 회사채 물량이 4천억원을 웃돌아 이를 떠안고 있는 은행신탁계정과 투신사는 발행기업이 도산할 경우 원리금을 받을 길이 없어진 것이다.

회사채 발행시장이 위축될 것은 뻔하고 만기연장도 어려워질 것이다.

또 자금압박을 받는 금융기관들이 기업자금의 회수에 나설 경우 기업 자금난이 심화되고 연쇄도산의 우려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김종수.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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