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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스포츠와 예술의 경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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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어지간한 일상에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을 만한 나이가 된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어 왔다. 지난 3월 28일, 태평양 너머에서 전해진 영상 하나가 그렇게 나의 목젖을 뜨겁게 치밀고 있었다.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시상대의 제일 높은 곳에서 연방 눈물을 훔치던 19세 소녀의 모습, 김연아 때문이었다. 그보다 며칠 전에 있었던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야구대회에서의 석패가 그 기쁨을 배가시켰다고 누군가는 말했다.

하지만 분명 우리는 야구대회가 끝나고 난 뒤에도 선전(善戰)이란 말로 일말의 아쉬움을 거뜬히 보듬어 낸 후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가져보는 여유이자 호기였다. 그래서 사람들을 하나의 동질감으로 묶는 데는 역시 스포츠만 한 것이 없는가 보다.

하지만 승패를 전제로 하는 스포츠의 속성을 떠나 김연아의 이번 우승은 분명히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몇 해 전부터 그녀의 가능성은 충분히 예견되었지만 이번 대회 중에 쏟아진 평가는 감히 상상조차 힘든 어휘들의 연속이었다.

연기가 펼쳐지고 있는 동안 이미 각국 해설자들은 ‘압도’ 혹은 ‘지배’라는 단정적인 단어들로 다른 선수들과의 비교를 불허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것이 ‘예술’이란 한마디로 집약되었다. 그 순간 김연아의 움직임은 더 이상 스포츠가 아니라 ‘예술’로 승화되고 있었다. 즉, 스포츠는 승패의 여부로써 결과가 측정되지만 예술의 경우는 이미 그 경계를 넘어서는 것임을 몸소 보여 주었던 것이다.

과연 이러한 김연아를 가능케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국내외의 많은 사람이 이에 대한 제각각의 분석을 내놓고 있다. 대부분은 기본적으로 타고난 신체조건, 끊임없는 기술 연마, 환상적인 코치진과의 융화 등을 꼽는다.

1996년부터 10여 년간 다섯 차례 세계선수권을 제패하며 피겨스케이팅계를 평정했던 미셸 콴은 빠른 스피드, 점프 시의 높은 비거리, 탁월한 음악적 해석력 등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그녀의 강점은 크게 보아 자신의 두 가지 노력이라 생각한다.

그 첫째는 끊임없는 창작의 노력이다. 일반적인 테크닉 습득 이외에도 그녀는 항상 다른 경쟁자들의 모습은 물론이요, 영화 속 배우들의 감정과 표정을 자신에 맞게 소화하고자 고민하고 분석했다고 한다. 독보적인 그녀만의 표현력은 바로 이러한 바탕 위에서 창출된 것이다.

둘째는 소통의 노력이다. 그녀는 지난해 여러 차례의 아이스쇼를 통해 또래의 발랄함을 여실히 보여 주며 대중에게 다가섰다. 그녀가 부른 노래는 원작보다 더 유명해졌고 그녀의 춤은 싱그러운 아름다움을 표출하며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그녀의 움직임은 단순한 스포츠를 뛰어넘어 예술의 경지에 비유될 수 있었으며 우리는 또 앞으로도 김연아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릇 사랑과 예술은 모두 세상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이라 한다.

따라서 이제 남겨진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녀가 묵묵히 실천해 왔던 것처럼 우리 역시 성급한 채근이나 욕심을 버리고 그녀가 하나의 ‘전설’이 되는 것을 지켜볼 일이다.

서영님 서울예술고등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