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상황' 미국선 어떻게 보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오늘 원화 환율은 어떻게 되었나. 주가는?" 한국 증시에 투자해본 적도 없는 닉 에버스타트 (워싱턴 소재 공공정책연구소.AEI 선임연구원) 박사는 요즘 한국과 관련된 질문을 전화로 받으면 대뜸 한국 경제의 가장 최근 상황을 먼저 되묻는다.

18일 (현지시간) 그는 한가지 질문을 덧붙였다.

"한국정부가 발표하려는 금융시장 안정대책의 골자는?" 한국에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만이 아니라 평소 한국 이슈를 다루는 외국 전문가.기관들은 요즘 이처럼 한국의 상황에 민감하다.

국제통화기금 (IMF) 은 더 말할 것도 없지만 발언은 철저히 삼가고 있다.

특히 한국에 대한 구제금융 가능성이 외국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입은 더욱 무거워졌다.

평소 전화를 잘 바꿔주던 비서들도 대변인실로 전화를 돌리거나 메시지만 남기라기 일쑤다.

18일 IMF 대변인은 "구제금융과 관련, 한국과 진행중인 논의는 없다" 며 "그러나 어느 회원국이든 IMF의 도움을 요청한다면 우리는 준비가 돼있다" 는 원론적 답변만 되풀이했다.

다만 이름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다른 한 관계자는 '캉드쉬 총재가 한국에 구제금융을 제안했다' 는 한 프랑스 경제지의 보도는 '사실무근' 이라고 확인했다.

미 자동차제조업협회 (AAMA) 의 로비스트인 제프리 보벡은 18일 "이미 오래 전부터 한국과 동남아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지만 아직 업계 차원에서 정부.의회에 건의한 것은 없다" 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한국 원화 동향 자체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그러나 원화 때문에 엔화가 계속 절하된다면 큰 문제다.

자동차만이 아니라 미.일 전체의 무역수지가 다시 크게 나빠질 것이기 때문" 이라고 덧붙였다.

지난주 하원 청문회에서 "동남아 통화위기는 결국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일인데도 미국은 뒷짐을 지고 있다" 며 미 의회가 정부의 IMF 출연에 퇴짜를 놓은 것을 비판했던 프레드 버그스텐 국제경제연구원 (IIE) 소장과 같은 논리다.

이들은 한국의 금융안정대책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수없이 같은 질문에 같은 대답을 하게 되는데, 믿을 만한 경제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해 신뢰를 다시 얻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다."

에버스타트 박사는 이번 금융위기는 투자자들의 '갑작스런 신뢰상실' 에서 비롯된 전세계적인 현상이고 한국도 그중 하나일 뿐이라며 "IMF로부터의 구제금융을 피할 수 없다고 미리 단정지을 필요는 없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투자자들의 한국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키지 못하면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고 덧붙였다.

로렌스 서머즈 미 재무부 부장관도 이달초 워싱턴에서 열렸던 한 세미나에서 "멕시코등 외환위기를 겪은 나라들을 보면 모두 위기를 부인하는 첫번째 단계에서 결국 위기상황이 벌어지는 네번째 단계를 차례로 밟아갔다" 며 "한국도 가능한한 첫번째 단계의 기간을 줄이고 더 적극적으로 투명한 정책대응에 나서야 한다" 고 말했다고 당시의 한 참석자가 전했다.

워싱턴 = 김수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