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산다]화가 이왈종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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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화가 이왈종 (李曰鍾.52) .프랑스의 미술전문지 '보자르' (Beaux Arts)가 지난달 대표적인 한국화가로 다룬 인물이다.

지금 그의 거처는 서귀포다.

제주에서 50여㎞를 내달려 한라산을 넘어 서귀포시로 진입, 또다시 꾸불꾸불한 골목길로 접어들어 포구가 지척인 곳 보목동. 90년 연초 서귀포에 작업실을 마련, 제주생활을 시작한 李화백은 3년전인 94년 이곳으로 그의 둥지를 옮겼다.

한폭의 동양화에나 나옴직한 곳. 아름드리 소나무가 집앞을 지키고 문밖에는 실개천이 흐르며 바로 뒤에는 재지귀오름 (기생화산) 이 버티고 바다는 50여m 거리다.

68년 대학시절 졸업여행을 통해 만난 제주도. 바다.산.나무 모든 것들이 그에겐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가까운 지금 그는 고향 (경기 화성) 이 아닌 서귀포를 '행복한 제2의 고향' 으로 삼고 있다.

"지난 90년 다니던 추계예술대에 안식년을 신청, 제주에서 작업을 하다보니 돌아가기가 싫었어요. 교수보다 '진정한 작가' 를 선택하려다 보니…. "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 교수직을 내팽개치고 홀로 찾은 제주지만 이제는 서울에 사는 아내와 두 아이들도 그를 격려한다.

"고교생인 딸.아들이 대학에 입학하면 집사람도 내려오겠답니다. " 그런 그가 떠올리는 인물은 제주에 유배됐거나 피난처로 살며 작가생활을 해온 추사 (秋史) 김정희 (金正喜) 와 화가 이중섭 (李仲燮) .그들의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제주다운 환경 때문이라는게 그의 생각이다.

이제 서귀포생활 8년째인 그의 소재는 꽃.나무.바람 그리고 초록빛. 주제는 '생활속의 중도 (中道) .' 그가 서귀포 생활속에서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평등사상이자 시대의식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이 그 나름대로 가치를 갖는다는 공존의식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공해에 찌든, 창문조차 열 수 없는 서울이란 땅은 자연과의 공존의식이 무너진 곳입니다.

제주섬은 사람을 비롯한 자연의 삼라만상이 평등하게 어우러진 '평안의 세계' 죠. "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돌하르방.자동차.꽃.물고기.사람 모두 크기가 엇비슷하다.

그의 작업실도 '서귀포 술꾼' 들이 즐겨찾는 곳. 마음이 통하는 시인등 문인들과 덕담을 나누는 안식처다.

하지만 서울 생활때보다 그의 작업은 더 활발하다.

평생 20여차례 전시회 가운데 제주생활중 그린 작품 전시회가 16차례다.

지난 7월 제주에서 처음 연 개인전 수익금 (1천만원) 도 전액 서귀포시에 기탁할 정도로 그는 제주를 아낀다.

제대로 된 전시공간이 없는 문화 불모지에 마땅한 공간을 마련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서귀포 시가지가 마치 서울을 옮겨놓는 것처럼 도시정비가 이뤄지면 안됩니다.

물.공기.길.나무 서귀포다운 아름다움을 지켜야하는데…. " 제주땅에 살며 치열한 작가의식을 불태우는 李화백은 그만큼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아름다움의 세상 '제주' 를 사랑하고 있다.

서귀포 = 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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