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규 새 시집 '본색' 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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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시인 정진규(65)씨가 열두번째 시집 '本色(본색)'(천년의시작)을 최근 펴냈다. 시집에는 행갈이를 무시한 대신 이미지의 리듬을 살린 정씨 특유의 산문시 79편과 '게으름에 대하여''만들 것인가, 발견할 것인가' 등 시론(詩論)을 밝힌 산문 2편이 실렸다.

한 눈에 쉽게 다가서는 시는 '산벚꽃'같은 시다. "북한산 산벚꽃들은 단칼에 작살내더라 내 어둠들을 一擧(일거)에 거두워내더라 그렇구나 일거라는 말이 있었구나 꽃들로 화안히 지워내더라 꽃봉분을 만들더구나 화들짝 알몸 떼거리로써!"(전문)

봄날 적나라하게 피어나는 벚꽃군을 노래한 시에서 시인은 '일거'라는 단어의 진면목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물방울을 튀기며 물을 차고 오르는 선도 높은 생선'같은 시를 얻기 위해 단어와 말을 주의깊게 살핀 결과다.

이전 시집들과 비교해 눈에 띄는 변화는 시 '詩論'에 드러나 있다. 정씨는 "제일 두려워했던 것은 내 시 속에 내 나이가 맨몸으로 들앉아 있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이젠 아니다 正面(정면)이다"라고 선언한다. 늙는다는 사실에 당당해지겠다는 것이다.

표제시 '本色'도 정씨의 그런 개심(改心)의 연장선상에 있다.

"봄날엔 나무들이 꽃으로 초록 눈엽(嫩葉.어린 잎)들로 본색을 탄로"시킨다. "하느님의 질문엔 어쩔 수 없이 정답이" 나오는 것이다.

계절이 바뀌어 앙상한 나뭇가지가 여린 새 잎을 피워 올리는 자연의 섭리를 다시 한번 절감하고 나서 정씨는 맨몸을 드러낼 용기를 냈을 것이다.

정씨는 "2000년 '도둑이 다녀가셨다' 이후 3년여의 소산 중 제왕절개의 것들은 함부로 내놓기가 안쓰러워 되도록 자연분만의 것들을 택했다"고 밝혔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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