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로잡은 테마]땅이름 연구 30년 도수희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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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나는 백제어 (百濟語) 연구의 외길을 걸어왔다.

처음 미개척 분야인 황무지에 뛰어들자 우선 연구에 필요한 백제어 자료를 수집하는데 몰두하였다.

그러나 기대와 정반대의 결과만 반복될 뿐이었다.

드디어 연구를 포기하기로 결단하는 순간 구세주처럼 다가온 존재가 곧 옛지명이었다.

"그렇지! 백제지명 그것이야말로 틀림없는 백제어다" 라고 감탄하며 무릎을 쳤다.

이때부터 지명과 인연을 맺고 살아온지 어언 30년이다.

나는 '삼국사기' 가 고맙게 남겨준 백제의 지명을 통해 백제어 연구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었고 나아가서 중국의 역사책에 전하여준 78개의 삼한 (三韓) 지명을 통하여 마한어 (馬韓語) , 진한어 (辰韓語) 를 연구하기까지 이르렀으니 내 생애의 대부분이 지명 연구에 바쳐진 셈이다.

가령 오늘날 사용빈도가 가장 높은 지명인 '서울' 은 1천년 사직의 애환이 서린 신라 고도 (古都) '서벌 (徐伐)' 이 그 뿌리이고, 사벌국의 수도 '사벌 (沙伐)' 과 백제의 수도 '소부리 (所夫里)' 가 또다른 뿌리들이다.

아직도 현지에 가면 그곳 향토인들이 옛땅 이름을 거의 그대로 부르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실로 우리 국어의 한량없는 어휘중에서 수가 가장 많고 또한 사용빈도가 높은 어휘가 곧 지명이다.

따라서 지명은 우리 민족의 고유어의 골격이 되는 값진 언어자료로서 한국학 연구의 전반에 걸쳐 활용되어야 할 기본자료라 하겠다.

'삼국사기' 지리지를 비롯하여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 지리지, '동국여지승람' 등 역대 지리지들이 하나같이 맨앞에 지명을 앞세워 기술하고 있다.

무엇보다 우선 행정단위의 지명부터 제시하여야 그 지명의 소관인 정치.경제.문화.교육.상업.산업등의 활동내용이 소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형문화재인 지명은 고금 (古今) 을 망라하여 빠짐없이 수집되어야 한다.

또 수집된 전체 지명은 정확히 기술분석된 내용만을 담아 국가적인 사업으로 '한국지명대사전' 이 편찬되어야 한다.

실로 어느 때보다도 지명의 재수집과 심도있는 연구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시기에 연구활동의 모체가 될 '한국지명학회' 가 지난 9월 20일 공식적으로 창립되어 기쁘기 그지없다.

도수희 <충남대 국어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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