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남북시대] 화기 넘친 모습들 통일이 성큼 온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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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이 세상의 온갖 꽃 중에서 아름답지 않은 꽃이 없듯 이 세상 모든 어린이도 예쁘고 사랑스럽지 않은 어린이는 없다.

어린이는 인간의 꽃이면서 인류의 미래다. 꽃으로 그 열매의 생김을 알아낼 수가 없듯 어린이도 그 미래를 전혀 점칠 수 없는 무한한 가능성을 숨기고 있는 존재다. 그 특성 때문에 모든 어린이는 알뜰살뜰한 보살핌을 받으며 건강하고 슬기롭게 자라날 권리가 있다.

어린이의 그 권리를 보호하고 신장시키기 위해 어른과 사회는 어린이가 누리는 권리의 무게와 맞먹는 의무를 달게 지는 것이다. 어른이 어린이를 위해 스스로의 의무를 짊어지고 나선 하나의 아름다운 자리가 평양에서 벌어졌다. 2004년 6월 14일 오전 10시 거행된 '평양 어깨동무어린이병원' 준공식이 그것이다.

6월 중순에 평양이 30도 넘게 더운 것은 100여년 만의 일이라고 했다. 아침부터 따가운 햇볕 속에 북한 동포 100여명은 신축 병원 정문의 양쪽으로 도열해 뜨겁게 박수를 치며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를 연발하고 있었다. 그들 남녀의 얼굴얼굴에는 진정 고마워하는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그 고마워함이 어디서 비롯되고 있는지는 준공식이 끝나고 병원을 둘러보면서 금세 알 수 있었다. 병원은 세련된 연분홍빛의 외관보다는 내부에 마음 찌르는 감동을 숨기고 있었다. 최신식 치료기계들과 입원실들을 거쳐 장난감 하나하나에 세심한 신경을 쓴 놀이방까지, 남쪽 사람들이 모아놓은 순수한 정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리고 병원과 연결된 건물에서는 콩우유가 생산되고 있었다. 영양결핍 어린이를 위해 매일 5t씩 애기젖을 생산해 보급하는 것이다.

일반 어린이로서는 최초로 북한땅을 밟은 십여명의 어린이들을 앞에 세우고, 남과 북의 200여명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진행된 준공식은 먼 훗날 보게 될 통일의 모습을 미리 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이좋게 모여서서 양쪽 대표가 거듭 확인하는 것은 서로 이해하고 협력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이룩하자는 것이었다.

'남북 어린이 어깨동무'를 통해 순수한 평화통일 운동을 펼쳐온 권근술 이사장은 여러 어려움을 겪어내면서도 마침내 북한에 최초의 병원을 세우기에 이른 것이다. 권 이사장은 이 병원이 남과 북의 수많은 사람의 통일 염원이 담긴 민족 화해와 협력의 기념비며, 남북 어린이들의 희망의 보금자리이자 통일의 디딤돌이라고 강조했다. 백번 맞는 말이다.

우리가 이 땅을 선조에게 물려받았듯 우리는 또 후대에게 이 땅을 물려줄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런데 어린이에게 분단된 땅을 물려준다는 것은 우리 기성세대의 죄가 아닐 수 없다. 분단 조국을 만든 기성세대 모두는 어린이들 앞에 공범자일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가 작은 뜻이나마 모아 이번에 병원을 개원한 것은 어린이에게 죄닦음을 시작한 작은 몸부림일 것이다. 이번 일은 완성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통일이 우리 전체의 일이듯 어깨동무어린이병원의 내일도 우리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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