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스노보드대회 참가 강기운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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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스무살 기운이는 까맣게 그을었다.

여름을 났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눈주위는 하얀게 남다르다.

스키 고글을 썼던 자리. 햇빛이 아니라 눈빛에 탄 것이다.

계절이 정반대인 뉴질랜드에서 두달을 보냈다.

스키? 아니다.

스노 보드. 세계적인 관련 장비업체인 립컬의 핼리챌린지대회에 참가하고 온 것이다.

역사도 짧고 선수층도 얇은 국내에서 기운이의 발전 가능성을 눈여겨본 한 관계자의 추천으로 초청을 받은 덕분이다.

다운타운 스트리트 스타일, 즉 점프종목에서 참가자 39명중 23위. 태극마크 달고 나간 첫 출전치고는 나쁜 성적은 아니다.

대신 거기서 만난 한국 사람들에게서 욕도 많이 먹었다.

"네까짓 게 무슨 태극마크냐, 국가대표냐, 언제 대회했냐. "

그런 적 없다.

보드 타는 게 좋았고, 기회가 왔으니 출전했을 뿐이다.

태극마크는 현지 사람들이 일본어로 말을 걸어오는게 싫어서라도 달았다.

국가대표? 태릉선수촌? 올림픽? 운동을 좋아하고, 이제껏 하고 있지만 이런 것이 기운이의 큰 관심사는 아니다.

대구에 사는 기운이의 운동장은 두류공원이다.

처음에는 묘기자전거 (BMX) 를 타면서 국내 자전거메이커의 후원을 받기도 했지만, 잘 타는 사람들이 하나둘 입대하면서 종목 자체가 시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 다음이 스케이트 보드. 자전거를 타면서 미군 애들이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거 볼 때 멋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직접 탈 생각은 못했다.

중 3때 친구가 타겠다기에 소개시켜주러 갔다가 자전거를 판 돈으로 장비를 구입해 함께 시작했다.

밥짓기 3년, 물긷기 3년 대신에 잘 타는 형들에게 물도 떠주고, 장비도 들어주면서 배웠다.

공인대회가 있는 것도 아니니 순위를 매기기는 좀 그렇지만, '남들만큼' 타는 실력은 갖췄다.

장비값이 만만찮은 스노 보드도 누가 돈을 대줘서 시작한 건 아니다.

3년전 스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처음 구경했는데 그대로 빠져들고 말았다.

"눈앞에서 타는데, 돌아버리겠더라구요. "

스노보드는 보드 크기도 훨씬 크고, 부츠를 신은 발을 바인딩으로 보드에 묶는 것이니 하늘을 날기도 훨씬 좋다.

"웅장하죠. " 그 날 집에 가는 길로 카드를 '빌려' 그었다.

기본기술, 특히 보드를 잡는 법 (그립) 이 스케이트 보드와 같기 때문에 한결 쉽게 배웠다.

스노 보드에 관한 한 기운이는 프로다.

국내 2호쯤 될까. 지난 봄부터 스포츠 브랜드 로시뇰로부터 장비와 대회참여때 훈련비를 후원받는다.

기운이 생각에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사람들끼리는 형제같다.

대구에서 서울에 보드하나 달랑 들고와도 먹여주고 재워준다.

"시련.아픔을 서로 아니까요. 팔에 깁스를 한 애를 보면 다 짐작이 가죠. 나도 그랬으니까. "

그 시련과 아픔이 보드를 배우는 시련만 뜻하는 건 아니다.

보드 가격이 적잖아서 선입견을 가질지도 모르지만, 기운이가 보드를 타면서 만난 친구들은 그저 유복하기보다는 저마다 아픈 속내가 있다.

스노 보드쪽은 "대학교수에서 자장면 배달원까지" 층이 더 넓기는 하다.

대신 스키를 타는 사람들한테 "외계인으로 취급받는" 처지는 비슷하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스노 보드 대회때마다 마치 동네잔치처럼 동호인들이 모이는 것은 그런 이유다.

장래 희망은? "하프 파이프 (반원통형 경사타기) 를 외국사람한테서가 아니라 한국사람끼리 배우는 거요. " 늘 가르쳐줄 사람에 목마른 기운이로서는 그만한 실력을 욕심내는 게 당연하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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