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들 외화조달위기 어느정도인가]비싼이자 준대도 사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재정경제원이 분석한 우리 금융기관들의 해외자금조달 애로상황은 위기국면의 실상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정부가 일부 금융기관의 부도 (Default.지급불능)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은 금융기관의 어려움이 얼마나 심각한 국면인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정부도 속으로는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형국을 반증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전체 외화자금 수급은 그리 걱정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일부 금융기관들이 필요한 자금을 제때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되고 있다.

재경원에 따르면 96년 이후 신설된 12개 종금사나 리스사중 일부는 웃돈을 쳐줘도 외화자금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 이들의 실상은 일부 부실기업들과 거의 비슷하다.

장기자금을 구하지 못해 급전에 가까운 단기자금을 빌려 근근이 꾸려가다가 단기자금줄이 막히자 부도위기에 몰리고 있는 형국이다.

예전엔 달러자금을 빌려준 외국 금융기관들이 만기를 슬슬 연장해줘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올들어 금융기관들이 한보.진로.기아등 부실대기업에 잇따라 물리면서 부실채권이 급증하자 해외 금융기관들이 만기연장을 잘 해주지 않고 오히려 빌려준 자금을 회수하면서 갑작스레 위기상황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외국 금융기관들이 한국의 대형 은행들에조차 대출을 줄이고 있는 판에 덩치도 작고 신용도 떨어지는 종금.리스사등은 정상적으로 달러자금 조달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가 지난 18일 외화자금 5억달러를 긴급 지원한 것도 이날 7개 종금사들이 급전을 구하지 못해 지급불능 상태에 빠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보다 근본적으로 우려하는 것은 일부 금융기관들의 지급불능 상태가 이를 방지하지 못한 금융당국에 대한 국제적인 불신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국가전체의 신용도가 떨어지고 곧바로 해외 금융기관들의 자금회수로 이어지게 된다.

동남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금융위기를 '강건너 불보듯' 할 수 없다는 금융업계 일각의 주장도 이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일부 시중은행이나 종금사등의 대외채무에 대해 정부가 직접 지급보증은 하지 않되 달러자금을 더 들여와 불을 끄겠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연내에 최고 1백억달러를 더 들여오기로 한 정부계획은 이런 방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와 함께 외화자금 조달에 애로를 겪고 있는 일부 종금사등 금융기관에 대해 외화자산을 빨리 시장에 내다 팔거나, 이를 담보로 잡히고 중장기로 돈을 꾸도록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달러를 더 들여오거나 원화자금을 더 풀어 불을 끄는 물량작전에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이 당국의 고민이다.

학계와 금융계에서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재경원이나 한국은행등 금융당국의 '위기관리능력' 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보고 있다.

철저히 재무구조와 신인도를 따져 투자하는 해외 금융기관이나 투자자들이 언제든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상황에서 금융시장을 진정시킬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상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