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낮은 곳’ 향한 리더십 절실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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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국제통화기금(IMF)이 우리 경제의 올해 성장률을 마이너스 4%로 전망했다. 불과 석 달 사이에 플러스 2%에서 마이너스 4%로 무려 6%포인트나 낮춘 것인데, 이런 사례는 전망기관으로서는 굴욕적이라 할 수 있다. 전망치가 이처럼 오락가락한 것을 감안하면 이번 마이너스 4%의 전망치도 꼭 그렇게 될 것으로 믿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경기침체의 골이 매우 깊을 거라는 각오만큼은 단단히 해두어야 할 것 같다.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추락하고 기업 파산과 실업자가 늘어나는 문제만이 우리가 당면한 도전의 전부는 아니라는 점이다. 경기침체가 경제의 영역을 넘어 사회위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경제위기가 자살률과 이혼율을 증가시키고, 경제적 불만이 사회의 결속력마저 무너뜨리는 문제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살률의 경우 97년의 인구 만 명당 1.3명에서 2007년에는 2.5명으로 10년 사이에 두 배가 늘어났다. 우리 경제가 ‘IMF 경제위기’의 한복판을 지나던 98년 자살률이 송곳 모양으로 치솟은 후 2002년 카드사태, 신용불량자 급증으로 살림살이가 어려워지자 다시 급증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중 가장 높다. 이혼율이 가장 높았던 때도 신용불량자가 쏟아지던 2003년이었다. 통계청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경제적 어려움이 자살충동의 가장 압도적인 이유였고, 이혼의 경우에도 경제 문제는 성격 차이에 이어 둘째로 중요한 이혼 사유였다.

프랑스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자살이란 ‘이 세상이 살 만한 가치가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했다. 경제위기 이후 ‘이 세상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며 절망했던 국민들이 두 배로 늘어났다는 얘기다. 빚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 속출하고, 가정이 해체돼 오갈 데 없는 소년소녀 가장들이 쏟아져 나오는 사회라면 성장률이 아무리 높아지고 멋진 재건축 아파트와 쾌적한 물길이 아무리 생겨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런 점에서 올해 마이너스 성장은 경제의 위기이자 사회의 위기이기도 하다. 경제문제 때문에 이혼하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또 얼마나 많아지겠는가? 물론 어려워질수록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힘을 합쳐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오히려 극한적인 대결 국면으로 치닫고만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자살이나 이혼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문제다. 그러나 정부가 이런 사회위기에 무관심하다면 존재 이유가 없다. 어려운 사람에게 무조건 돈을 갖다 주자는 얘기가 아니다. 아무리 궁핍해도 돈이면 다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성장률 하락을 저지하는 게 중요한 목표가 돼 있지만 성장률 조절만으로는 사회통합을 이루어낼 수 없다. 머지않아 경제가 더 나빠질수록, 소위 ‘민심의 수습’이 더욱 시급하고 중요한 정책목표로 부각될 게 분명하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눈을 돌려야 한다. 국민들에게 우리나라가 그래도 살 만한 땅이며,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인생이 값진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줘야 한다.

 벙커 속의 사령관은 수많은 병사들을 사지로 몰아넣으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말아야 한다. 진지를 점령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임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종류의 리더십이 필요한 때는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바다가 온갖 시냇물과 샘물의 어른이 되는 이유는 낮은 데에 있기 때문’이라는 옛말에서 지혜를 찾아야 할 때다. 지금 지도자들은 지하벙커보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야 할 때가 아닐까? 스스로 자세를 낮춰 밑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같이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낮은 데로 임하는’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박종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