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국전 유해발굴 속도 더 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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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어떤 국가가 ‘제대로 된 국가’냐를 판단하는 명확한 기준이 있다. 국가를 지키기 위해 적군과 싸우다 목숨을 바친 전사자들을 그 국가와 국민이 어떻게 대하느냐다. 품격이 떨어지는 국가는 이런 일에 소홀하나, 품격이 높은 국가는 국가적 역량을 쏟아붓는다. 미국이 각종 전투에서 희생된 미군 유해발굴에 그토록 정성을 쏟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점에서 디지털 X선 촬영기 등 각종 첨단 기기가 설치된 ‘국방부 유해발굴단 청사’가 최근 개관된 것은 한국의 국격(國格)을 한 차원 올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역대 정권의 무신경으로 시간을 많이 허비했기 때문이다. 유해발굴 사업이 시작된 것은 2000년. 56년 전에 한국전이 휴전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것도 매우 늦은 것이다. 게다가 발굴단 규모도 초기엔 불과 20여 명밖에 안 됐다. 이러니 ‘하는 둥 마는 둥’하다 7년의 세월이 지나가 버린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년이면 6·25 발발 60주년이 되지만 유가족들의 한(恨)은 아직도 우리를 처연케 한다. 한 미망인이 TV에 나와 “신혼 초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듣고도 엉엉 울면 시댁 식구들에게 무슨 소리 들을까 봐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이 붓도록 울었다”며 “남편 뼛조각이라도 찾아 국립묘지에 이장하는 게 소원”이라고 절규한 적이 있다. 이런 기막힌 사연을 가졌을 전사·실종자가 무려 13만 명이나, 지금까지 찾은 유해는 고작 2239구에 불과하다. 유해발굴과 신원확인 작업은 보다 속도를 내야 한다. 전사자의 부인이나 형제 등 1세대가 점차 세상을 떠날 연령이 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전사자와 그 가족들에게 이렇게 무심한 국가는 ‘국가’라고 말할 수 없다.

유해발굴 사업은 점차 그 체계가 잡혀 가고 있다. 그러나 이 사업이 성공하려면 군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전사 장소나 매장 위치를 50년 지난 지금에 와서 파악하기가 워낙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정보를 제공해줄 참전자와 해당 지역 주민의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는 군과 지방자치단체와의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구성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오늘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이들의 숭고한 희생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다는 점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 국민들의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동참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