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규제 시한 지나면 폐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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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가 발표한 ‘규제일몰제 확대 도입 방안’은 ‘숨은 규제’까지 찾아내 개혁하겠다는 의도에서 마련됐다. 규제일몰제란 존속시한을 정한 뒤 그 시한이 지나면 규제 효력을 자동 상실시키는 제도다.

이명박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경쟁력 강화 회의에 앞서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이 대통령, 한국경영자총협회 이수영 회장,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장석춘 위원장, 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의장, 대한상공회의소 손경식 회장. [오종택 기자]


규제일몰제는 1998년 실시됐다. 하지만 10년이 넘도록 일몰제의 적용을 받은 규제는 101건뿐이었다. 각종 형태로 존재하는 규제가 1만여 건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전체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규제일몰제가 이처럼 저조한 실적을 보인 것은 제도의 적용 대상이 일부 등록된 규제에 국한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관리하는 규제 명단에는 이름을 올리지 않은 채 법령이나 행정규칙(훈령·예규) 형태로만 존재하며 불편을 초래하는 ‘숨은 규제’들이 훨씬 더 많았다는 게 기업 등 민간부문에서 꾸준히 제기돼 온 주장이었다.

경쟁력강화위원회가 이날 발표한 방안은 민간의 의견을 대폭 수용한 것이다. 이 방안에 따르면 앞으로는 ▶기존 등록규제 ▶미등록규제 ▶행정규칙으로 인한 규제가 모두 일몰제의 적용 대상이 된다. 사실상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규제에 존속시한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관리하겠다는 뜻이다. 농지소유 상한, 비디오물 광고 선전 제한 등이 법령으로는 규정돼 있지만 규제 명단에는 없는 대표적인 미등록규제였다. 위원회의 계산에 따르면 이들 규제를 포함해 당장 8600여 건의 규제가 일몰제의 적용 범위에 포함되게 된다. <표 참조>

‘재검토형 일몰제’를 함께 도입하기로 결정한 것도 민간부문의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존속시한으로 효력만을 통제하는 기존 일몰제의 한계를 보완해 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기존 효력상실형 일몰제만 있을 때는 한 번 “불가피하다”는 판정을 받은 규제는 없애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일단 모든 규제에 존속시한을 부여한 뒤 이 중 불가피한 규제라고 해도 시한이 됐을 때마다 타당성을 한 번 더 검토받게 하는 게 재검토형 일몰제다.

경쟁력강화위가 연초부터 강력한 규제개혁안을 들고 나온 것을 놓고 청와대 참모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집권 2년차를 맞아 ‘일하는 해’ ‘속도전’ 등을 강조해 온 이 대통령이 기업인 출신 지도자로서 트레이드 마크 같은 ‘규제혁파’ 카드를 던졌다는 분석이다. 박형준 청와대 홍보기획관도 “이번 조치는 이명박 정부가 역점을 둬온 규제개혁 차원에서 결정됐다”며 “그간 규제일몰제가 있었음에도 규제가 지속되고, 오히려 강화돼 온 것을 바로잡자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규제일몰제 확대 방안은 사공일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경쟁력강화특위를 이끈 이래 현 정부에서 같은 역할을 해온 사공 위원장은 최근 G20조정위로 자리를 옮겼다.

남궁욱 기자 ,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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