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학자 故예용해 전집 - 전통문화 이해 길라잡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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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중반기로 접어든 올 문화유산의 해를 뜻깊게 장식할 책이 나왔다.지난 95년4월 66세로 타계한 민속학자이자 본지 초대 문화부장을 지낸 고(故)예용해(芮庸海)씨의 유작이 모두 6권의 전집(대원사刊)으로 묶여 나온 것.전집 하면 흔히 연상되는 무거운 분위기 대신 산뜻한 편집과 깔끔한 구성으로 일반 단행본을 읽는듯한 느낌을 준다.낱권으로도 판매된다.

“봉(鳳).황(凰)이 나는 화문석 한가운데 서서 너붓이 큰절을 한다.장내에 고요가 흐른다.거문고를 당겨놓고 스르르 눈을 감는다.숨막힐듯한 긴장을 어루만지듯 거문고 가락은 흐른다.……살동 당 등도링징 롱 징 둥 둥 덩 등…….” 지난 60년 거문고의 명인 신쾌동(당시 53세)의 연주회를 옮긴 장면이다.전통기능인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제도적 보호조차 없던 시절에 현재'무형문화재'로 불리는 장인(匠人)들을 찾아 우리 것의 소중함을 알린 芮씨의 선각자적 혜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이처럼 芮씨는 평생을 전통문화의 연구.보존에 헌신한 것으로 유명하다.신문기자를 시작으로 서울시문화위원.문화재위원등을 지내며 전통공예의 대중화와 함께 해외유출 한국문화재의 발굴에 진력했다.

이번 전집은 전통문화에 대한 그의 남다른 열정을 한눈에 보여준다.가곡.판소리.오광대.나전칠기.백자도공.조각장등 모두 62분야에 걸친 전통기능인들의 모습이 1권'인간문화재'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2권'민중의 유산'에는 우리 생활속에 자리했던 전통 공예품들이 줄줄이 등장한다.꽃담과 장독대,붓.필통.갓등 남정네 용품,비녀.주머니.반짇고리등 안방비품등이 저자 특유의 맛깔스런 문체로 소개된다.

“뒤로는 석류나 향나무를 심고 앞으로는 맨드라미며 분꽃을 심어서 철따라 꽃과 그 향기로 감싸이게 했다.아낙네들이 음식의 간을 하게 하는 간장을 보살피려는 정성을 나타낸다.”(장독대) 불과 10~20년전에 쓰여진 글임에도 여유의 미학을 잊고 사는 우리들을 반성케 한다.芮씨의 차(茶)에 대한 관심도 각별해 3권'차를 찾아서'에는 한국차의 역사와 선조들의 이야기가 정감있게 이어진다.4권'민속공예의 맥'은 전국 민속공예의 실태를 현장답사를 통해 정리한 보고서.잡지.신문에 기고한 수필.단상(斷想)들은 5권과 6권인'이바구저바구'와'갈림길에 선 문화'에 실렸다.전집 간행위원으론 정양모 국립중앙박물관장,조유전 국립민속박물관장,경기도 가평 지선암의 흥선스님등 13명이 참여했으며 오는 25일부터 7월28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02-720-3138)에서는 芮씨가 평생 수집했던 민속품을 전시하는'예용해 선생 기증 민속자료전'도 열린다. 박정호 기자

<사진설명>

지난 72년 경주 유적지를 방문했을 때의 예용해씨(왼쪽에서 네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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