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영화들 야릇한 解禁 - 낙태장면.목욕탕 등 못볼 곳 보여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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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스크린에 펼쳐지는 다른 사람의 삶과 행위들을 은밀하게'훔쳐보기'는 영화가 관객에게 제공하는 주요한 쾌락중 하나다.그래서 프랑수아 트뤼포는 앨프리드 히치콕과의 대화에서“영화를 볼 때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관음증환자”라고 말했다.

그래서 늘 관객의 훔쳐보기 본능을 이용한 준 포르노그래피로 흥행을 해보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진다.관음증에 호소하는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깊이 있게 파악하지 못할 경우 단순한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게 되고 나아가 외설로 떨어지게 마련이다.

요즘 한국영화계를 보면 어느 순간부터인지 은밀한 공간을 훔쳐보는 영화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지난달 31일 개봉된 박철수감독의'산부인과'를 비롯,현재 촬영이 진행중인 선우완감독의'마리아와 여인숙',박기용감독의'모텔 선인장',곽경택감독의'억수탕'은 관객의 성적 호기심을 자극해보자는 의도가 진하게 배어있다. 〈관계기사 42면〉 여성들만의 공간을 엿보게 만드는'산부인과'의 카메라는 남자들에게는 미지의 장소에서 벌어지는 천태만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낙태.처녀막 재생수술.시험관수정을 위한 정자채취의 고역등 해프닝들이 펼쳐지는 틈틈이 자연분만과 제왕절개 출산장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충격적인 영상으로 관객들의 관심을 끌어들이는데는 성공하고 있다.그러나 감독 스스로'가십영화'라고 표현했듯 쇼킹한 효과나 호기심에 호소하는 가벼운 에피소드 나열에 그친 점은 분명 아쉬운 일이다.

'마리아와 여인숙''모텔 선인장''억수탕'은 각각 여관.러브호텔.공중목욕탕등 은밀하고 사적인 공간들을 공개적인 영역으로 끌어내려는 시도들이다.그러나 왜 갑자기 훔쳐보기인가.이들의 시나리오를 읽으면 훔쳐보기 뒤의'불순한 의도'들이 조금씩 감지되는 듯하다.

'서랍 속에 숨겨둔 도색잡지 같은 영화'를 표방하는'마리아와 여인숙'은 엄마와 함께 여인숙에 사는 7세 소녀 마리아가 여관창고에 난 구멍을 통해 들여다보는 남녀의 정사장면이 많다.'모텔 선인장'역시 러브호텔의 같은 방을 찾은 세쌍의 남녀를 통해 갖가지 사랑의 모습을 그려낸다는 설명이지만 역시 남녀간의 정사장면이 많이 포함돼 있다.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카메라의 시선이 모텔의 한 구석진 방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관객들로 하여금“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훔쳐볼 수 있게 한다”는 설명이다.

'억수탕'역시 여탕에 잠입한 여장남자의 시선을 빌린 여체훔쳐보기,미국인 남자의 등장이 촉발하는 남근콤플렉스,유권자 때밀이에 나선 국회의원 후보 아내,포경수술과 자위행위등에 대한 개그등 가십성 에피소드들이 펼쳐진다.관객들의 호기심 붙들기의 의도가 진하게 묻어나는 이 영화들이 혹시 흥행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영화계가 영화적인 새로움,혹은 실험보다는 성적인 개그,색다른 소재주의나 충격요법등 말초적 자극으로 돌파구를 찾으려 나선 것은 아닌지 결과가 궁금하다. 이남 기자

<사진설명>

어린이의 성적 호기심을 그릴 영화'마리아와 여인숙'과 상영중인'산부인과'의 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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