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대기업 젊은 연구원들 홀로서기 - 벤처 창업 열기 뜨겁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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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겨울이 깊어지던 지난해말 한 대기업 연구원 서너명이 회사 근처 맥주집에 모였다.대학시절 품었던 창업의 꿈을 어떻게 하면 더 늦기전에 함께 실행에 옮길 수 있느냐는 것이 이들이 머리를 맞댄 이유였다.동고동락(同苦同樂)으로 다져진 동지애 덕분에 이들은 쉽게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그날부터 곧바로 회사설립 준비에 착수,올 3월말 드디어 자신들이 직접 만든 회사의 간판을 내걸었다.겨우 5개월만에,그것도 20대후반부터 30대초반의 젊은이들이 해낸 일이었다.

젊은 연구원들의 새 보금자리는 NC소프트(대표 洪承敦).현대정보기술내 인터넷사업부 소속 경력 4~5년의 연구원 11명이 한꺼번에 회사를 그만두고 자본금 1억원으로 인트라넷 전문 벤처기업을 탄생시켰다.약관(弱冠)의 이들은 이미 대기업에서 기초수업을 쌓아 프로급이나 다름없다.서울대 86학번 출신들을 중심으로 모두 전자공학.컴퓨터공학.전산학등을 전공했다.

이들의 꿈은 마이크로소프트의'노르망디'에 버금가는 인터넷 통합시스템을 만들어 세계시장을 정복하는 것.벌써 SK텔레콤의 4억원짜리 전산프로젝트를 독점수주했고 데이콤과 공동사업을 벌이고 있는등 출발이 순조롭다.

현대정보기술 아미넷팀 마케팅팀장 출신 이 회사 홍승돈 사장은“자고 일어나면 달라지는 정보통신업계에 대기업의 조직문화는 맞지 않았다”며“백번을 생각해도 홀로서기한 것이 잘했다”고 자신들의 결단에 만족해했다.洪사장은 미국에서 전산학을 전공한 해외파로 미국시장 진출에 승부를 걸고 있다.

최근 정보통신분야를 중심으로 대기업 출신 연구원들의 창업열기가 뜨겁다.이미 3~4년전부터 잘나가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홀로서기를 시도한 연구원들이 생기기 시작,지난해에는 매출 5백억원을 돌파한 회사들도 속속 탄생했다.

지난 90년에 창업한 두인전자(대표 金光洙)는 LG전자 중앙연구소 출신들이 주축이 돼 멀티미디어 통합카드분야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으며 C&S테크놀로지(대표 徐承模)는 삼성전자 반도체분야 연구원들이 창업,무선호출기 통합칩을 독자개발하는등 통신및 멀티미디어 비메모리칩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또 대기업들의 독무대였던 무선호출기분야에서 업계를 주도하고 있는 스탠다드텔레콤과 엠아이텔도 삼성전자 출신들이 90년초 창업한 회사들이다.

이들 연구원 출신 창업자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대기업의 동맥경화 현상에 한계를 느껴'한번 신나게 일해보자'는 순수한 동기가 그 출발점이 됐다는 점. 그만큼 회사운영도 대기업과 다르다.사장은 마케팅.자금.경영기획등에 전념하고 개발.인사는 팀별로 독자 운영되는등 권한위임에 철저하다.또 우리사주나 스톡옵션은 필수적이고 능력에 따른 성과급제를 적극 도입하는등 부(富)의 분배에도 남다른 신경을 쓰고 있다.한국생산성본부 김익택(金益宅)연구위원은“최근 대기업 연구원들의 창업(스핀오프)러시는 국책연구소나 대학 연구원들의 창업과 함께 한계상황에 다다른 국내경제의 돌파구가 될 것”이라며“정부가 무엇보다 벤처기업의 해외진출에 눈을 돌려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상산업부가 최근 2005년까지 벤처기업을 4만개로 늘리고 이중 1천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을 1천개 이상 육성키로 하는등 정부의 각종 지원책과 맞물려 창업러시는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이형교 기자

<사진설명>

세계 제일의 인터넷 전문회사를 꿈꾸며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NC소프트를 설립한 홍승돈사장을 비롯한 이 회사 관계자들이 엄지손가락을 들어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백종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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