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재정 장관 내정자, 친기업 발언으로 386세력 견제 받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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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도마에 자주 올리는 대상이 관료들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자가 후한 점수를 주는 ‘묘한’ 관료가 있다. 바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다. 일을 잘하는 것만으론 이런 평가를 받기 어렵다. 가까이서 접해본 사람들은 그의 인간미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할 말은 하면서도 상대방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게 그의 강점이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항상 국가 경제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고 말하는 애국자이기도 하다.

큰 몸집에 비해 그는 눈물이 많다. 외환위기 직후 환란의 주범으로 몰린 옛 재정경제원 간부들이 검찰에서 밤샘 조사를 받은 일이 있다. 조사를 마치고 새벽에 나온 윤 내정자는 옆방에서 조사를 받은 김규복 금융정책과장 등 후배들을 부둥켜 안고 “너희들까지 고생하게 만들었다”며 엉엉 울었다고 한다.

2007년 김중회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이 수뢰 혐의를 받고 있을 때다. 검찰 수사를 받고 나오는 김 부원장을 끌어안고 “나 당신 믿는다.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여서 주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어려운 일에 처한 부하들에게는 손수 편지를 써서 위로했다. 자연히 따르는 후배들이 많다. 선 굵은 ‘보스형’이라는 평가가 어김없이 따라 붙는다.

관료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1997년 재경원 금융정책실장으로 외환위기를 막느라 분투했으나 결국 환란의 책임을 졌다. 세무대학장으로 한발 비켜섰다가 2004년까지 5년간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로 가면서 국내에서 점점 잊혀졌다.

2004년 노무현 정부에서 금융감독위원장으로 중용됐으나 코드가 맞지 않아 고생했다. 당시 수많은 경제관료가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시장과 코드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동안 그는 줄곧 ‘친시장, 친기업’의 소신 발언을 했다. 그래서 정권 주변 386 세력의 견제를 받았다. 하지만 너무 강하면 건드리기 어려운 것일까. 386 세력도 어쩌지 못했고, 3년 임기를 다 채운 최초의 금감위원장으로 2007년 물러났다. 그 이후 그에게는 ‘할 말을 하는 뚝심 있는 관료’라는 평가가 추가됐다. 그를 노무현 정부의 사람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금감위원장 퇴임의 변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절대 흔들리면 안 되는 가치”라고 말했던 그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흔들리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지키기 위해 다시 중책을 맡았다. 사석에서 “공무원이 되지 않았으면 영화감독이 됐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해피 엔딩의 근사한 영화를 찍어주기를 기대한다.

고현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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