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대변인>1. 미국 백악관 매커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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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정부대변인은 말 그대로'나라의 입'이다.달리 말하면 정부와 국민을 잇는 가교이자 창구다.정부대변인은 또 그 나라의 국정운용과 통치행태를 가늠케해주는 상징으로 대변인의 역할과 활동이야말로 바로 그 나라의 실체를 진단해보는 좋은'잣대'이기도 하다.투명한 정치,언로(言路)가 트인 곳에서는 대변인의 활동범위와 무게가 커진다.세계를 움직이는 주요 나라들의 대변인 활동을 통해 해당국가와 우리의 정치실상을 점검해본다. 편집자

매일 오전4시 워싱턴 근교 메릴랜드주 실버 스프링.백악관 대변인 마이크 매커리(42)집 거실의 불이 켜진다.잠자리에서 일어난 매커리는 우선 워크맨을 찾아 리시버를 낀다.방송 뉴스를 들으며 배달된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를 훑어보는'하루 일과'의 시작이다.미국의 주요 방송에 영국 BBC방송까지 들으며 세계 주요 뉴스거리를 정리한다.백악관 출입기자단으로부터 쏟아질 만한 질문들을 우선 챙겨보는 것이다. 오전6시쯤 세 아이들이 일어나면 자녀들과 함께 아침 준비를 할 때도 많다.부인 데브라가 조금이라도 잠을 더 잘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다.

백악관의 사무실에 도착하는 시간은 어김없이 7시.사무실 책상위에는 5개 방송사와 통신,12개 신문등의 주요 기사를 정리한 그날의 뉴스요약이 그를 기다린다.

7시30분쯤 어스킨 볼스 백악관비서실장이 주재하는 비서관회의에 참석,반시간여 그날의 대통령 일정을 논의한뒤 대변인실로 돌아와 브리핑거리를 정리한 매커리가 기자들과 만나는 시간은 오전9시15분.백악관 출입기자단과의 비공식대화를 가지는 시간이다.소위'개글'이라 불리는 이 시간에는 말뜻대로 시끌벅적한 분위기속에서 온갖 얘기들이 오간다.

정례브리핑때 나올 문제들을 미리 점검하면서 백악관 출입기자단과 격의없는 대화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이후부터 매커리는 거의 하루종일 클린턴 대통령과'붙어'산다.클린턴 입장에서는 부인 힐러리보다 함께 있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 비서실장과 대변인은 대통령 주재 각종 주요회의와 협의,면담에 어김없이 배석하는'고정멤버'이기 때문이다.따라서 매커리는 굵직한 국내외 현안을 포함,세계 돌아가는 것을 뚜르르 꿰게 마련이다.

매일 오후1시에 시작되는 백악관 정례브리핑에는 70여명의 고정 출입기자들과 그날그날 사안에 따라 관심있는 기자들,그리고 관련부처 관리들이 참석한다.

브리핑은 보통 1시간30분 남짓.그러나 오후4시쯤 되면 그는 다시 기자들과 어울린다.주요 현안에 대한 뒷얘기나 배경설명등 국민의'알 권리'를 충족시켜주기 위함이다.'열린 정치''열린 국정'의 상징으로 끊임없이 언로를 트이게 하는 것이 백악관 대변인의 소임이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미국에는 정부의 공식 대변인이란 자리가 없다.정부 각 부처에 대변인이 있고 매커리는 '대통령의 입'노릇을 할 뿐이다.그러나 그는 단순히'고위층'의 의사를 전하는'앵무새'가 아니다.여론과 언론,정부 각 부처등 각계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백악관에 전하고 이를 토대로 결정된 국정(國政)을 다시 국민에게 알리는,일종의 조정자다.따라서 그의 목소리에는 권위가 실려있다.

미국을 대표하는'입'이 되기 위한 특별한 자격 요건은 없다.그러나 미국,나아가 세계문제 전반에 대한 깊은 식견은 필수적이다.물론 대통령의 신임도 중요하다.또 정치적인 감각,국정의 대변자로서 공정성,언론과의 친숙성등이 필요조건들이다. 이 가운데 공정성은 다른 어느 것 이상이다.과거 클린턴 대통령의 측근이던 조지 스테파노풀로스나 디디 마이어스가 대변인직을 중도하차한 것도“대통령의 신임보다는 공정성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의 결과다.

76년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한 매커리는 일찌감치 정치판의 생리를 익혔다.이후 존 글렌 상원의원의 공보비서관,보브 케리 상원의원등의 공보비서관을 지내다 92년 클린턴이 민주당 대선 티켓을 따낸뒤 클린턴 진영에 합류,93년 국무부 대변인등을 거쳐 40세때인 95년부터 백악관을 맡았다. 그의 직급은 공식적으로 차관보급.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의'무게'는 그 이상이라는데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미국정부와 국민을 연결하는 가교로 평가받는 백악관 대변인 자리에는 또하나'관행'이 있다.

비록 한때 국정의 최고 보필자였지만 대변인을 마친 뒤에는 결코 장관이나 기타 요직등 관변에 머무르지 않고 야인으로 돌아간다는'전통'이 그것이다.

워싱턴=길정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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