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중년>9. 종교귀의 - 허무한 삶 신앙으로 돌파구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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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급변하는 세태 속에서 중년은 날로 위축돼 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중년은 인생의 황금기'라 불린다.의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늘어나 40~50대가 인생의 중심으로 자리한데다 중년은 사회 각 분야에서도 의사결정권을 지닌 핵심세대가 된 때문이다.

그러나 화려함의 뒷면에는 중년이 감당해야 할 무거운 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해가 지날수록 달라지는 체력의 쇠퇴,젊음의 상실에서 비롯되는 인생의 유한성에 대한 인식,막연하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등이 중년을 짓누른다.

이같은 현실적인 자각은 중년으로 하여금 일상적인 생계문제로부터 벗어나 보다 근본적인 인생의 가치와 의미등에 대한 의문을 갖도록 만든다.'중년의 위기와 갈등'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때쯤이면'종교를 가져보라'는 주변의 권유가 예전처럼 예사롭지만은 않게 되고 실제 종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다.

중소기업 부장인 김태현(48.서울종로구신영동)씨는 기독교신자인 아내와 결혼했지만 지난해까지만해도 교회에 나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회사생활이 바쁜데다 일요일엔 회사동료나 친구들과 골프치러 다니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던 것.하지만 지난해말 한달여동안 급성장염을 심하게 앓고나자 생각이 달라졌다.느닷없이 아내에게 교회에 나가겠다고 선언한 것.“한번 아프고 나니 이렇게 살아서 안되겠다 싶더군요.뭔가 기댈 곳이 필요하더라고요.마침 아내와 아이들도 교회에 다니고 해서 신자가 됐지요.무엇보다 가족들이 좋아하고 제 자신도 크게 안정돼가는 것같습니다.”김씨의 소감이다.

지난해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과 사별한 조영순(55.서울양천구목동)씨도 처음엔 그 충격을 가눌 길이 없었다.그러다 친구의 권유로 절을 찾았다.물론 자녀들의 위로가 힘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외롭고 힘들 때마다 가까운 암자를 찾아 불공을 드리는 것이 훨씬 편안할 수 있었던 것. 마음의 안정도 찾고 새로운 사람들도 사귈 수 있었다.게다가 산을 오르다 보니 건강도 많이 좋아졌다.조씨는 요즘 전국 유명사찰을 돌아보며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백일기도도 드리면서 보람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통계상으로도 종교에 귀의하고 있는 중년의 비율은 높다.한국종교사회연구소가 펴낸 95년 한국종교연감에 따르면'종교가 있다'는 40대는 57.5%,50대는 58.8%로 전체 평균 49.9%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김병서(이화여대 사회학)교수는 “중년은 인생의 전환기여서 생활상 스트레스가 많은 시기인데다 내면적인 문제 해결과 인간관계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려는 욕구로 인해 훨씬 더 종교에 집착하게 된다”며“이는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중년에 새롭게 종교를 갖게 됨으로써 얻는 장점 만큼이나 갈등도 유의해야 할 점이다.특히 중년의 상실감이나 허탈감에 젖어있을 경우 무조건적으로 종교에만 매달리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중년이 되면서 건강도 나빠지고 정신적으로도 고민이 많아진 주부 김모(47)씨는 마땅한 취미생활도 없이 지내다 이웃의 권유로 우연히 신흥종교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김씨는 이후 건강도 좋아지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어 무엇보다 마음이 안정됐다.

자연히 종교에 심취하게 된 김씨는 남편 몰래 많은 돈을 기부하는 일이 잦아졌다.급기야 김씨는 본격적인 수도를 위해 가정을 떠나 공동체생활에 나설 것을 결심한 것.결국 남편의 만류로 집을 나가지는 않았지만 그전처럼 평화롭던 가정의 모습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길희성(서강대 종교학)교수는“종교는 기본적으로 재물을 늘려주거나 병을 고치는 기복적 요소보다 건전한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주는 것”이라며“윤리성이 결여되거나 사회의 상식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종교는 경계해야 하며 기성교단들도 기복적인 요소를 지나치게 강조하지 말아야 한다”고 일러준다. 신용호 기자

<사진설명>

사회학자 베버는“모든 종교적 가치에 가장 강한 감수성을 갖는 때가

중년”이라고 말한다.명동성당에서 천주교에 입문해 기본교리교육을 받고

있는 중년들. 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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