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올림픽 30年·태권도 40年] 97. 한국의 여성 스포츠(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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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우승한 여자핸드볼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여자핸드볼은 서울 대회에 이어 2연속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

 한국 여자선수들이 본격적으로 올림픽에 진출하게 된 계기는 1981년 바덴바덴 IOC 총회에서 서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것이다.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 아래 선수들이 육성됐고, 84년 LA 올림픽부터 꽃을 피웠다.

양궁 여자개인전에서 서향순이 우승, 한국 여성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모두 세계선수권 7관왕 김진호의 금메달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승리의 여신 니케는 여고생 서향순에게 미소를 보냈다. 올림픽 금메달은 역시 임자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박찬숙·김화순·최경희 등이 활약한 농구와 윤병순·성경화 등이 이끈 핸드볼은 나란히 은메달을 땄다.

한국 구기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의 영광은 여자핸드볼이 차지했다. 88년 서울 올림픽이 무대였다. 수원에서 열린 소련과의 결승전. 누구도 한국의 승리를 예상하지 않았다. 신장이며 체격이며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여자선수들은 쓰러져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기어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손미나·기미숙·박현숙·성경화·김현미·김명순·김경순·석민희·김춘례·한현숙·이미영·이기순·임미경·김영숙·송지현. 자랑스러운 이름들이다.

서울 올림픽 땐 탁구에서도 여자복식 양영자·현정화가 중국의 만리장성을 넘어 첫 금메달을 따냈다. 또 여자하키는 값진 은메달을 획득, 한국 여자구기가 세계 정상 수준에 올랐음을 보여줬다.

여자핸드볼은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올림픽 2연속 금메달이라는 쾌거를 이룩했는데 마침 새로 선출된 IOC 부위원장 자격으로 내가 시상을 하는 영광을 누렸다.

한국 여자양궁은 84년 LA올림픽 이후 단 한 번도 금메달을 놓친 적이 없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단체전은 여유 있게 우승했으나 개인전에서 박성현 선수가 중국선수에게 져 금메달을 놓친 게 아쉽다.

여자선수들은 유도와 태권도 등 격투기에서도 메달 행진을 계속했고, 배드민턴에서도 단식과 혼합복식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특히 중국이 절대강세인 여자역도에서 장미란이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한 것은 기념비적인 일이다.

겨울올림픽 종목에서 여자선수의 활약상은 훨씬 뒤에 나타났다. 시설도 열악했고, 선수층도 얇았다. 이남순·유선희 선수가 빙속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다가 92년 알베르빌 올림픽부터 쇼트트랙이 정식 종목으로 되면서 단숨에 세계 정상의 실력을 과시했다. 전이경 선수는 올림픽에서만 4개의 금메달을 획득했고, 원혜영·김소희·김윤미·안상미·최민경·주민진·진선유·고기현 등이 뒤를 이었다. 지금은 피겨스케이팅에서도 김연아 선수가 세계 정상급 실력을 과시하면서 올림픽 금메달을 노리고 있다.

올림픽 종목은 아니지만 골프에서 한국 여자선수들의 활약은 눈부실 정도다. 박세리·김미현·박지은 등 1세대 선수들에 이어 이른바 ‘박세리 키즈’라고 불리는 신지애 등 2세대 선수들이 미국 LPGA 무대를 석권하고 있다.

김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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