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나다>국립중앙과학관 정동찬씨의 '겨레과학' 그 옛 슬기 찾아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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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낫.옹기.물레방아같은 것들에'과학'이란 이름을 붙여보자. 마치 한복입은 사람에게 바바리 코트를 걸쳐준 것만큼이나 어색하다.대신 이것들엔'슬기'라는 말이 제격이라는 느낌이다.

과학과 슬기-이 둘은 진리와 이치를 밝혀준다는 점에선 같다.하지만 과학엔'체계적'이라는 조건이 추가로 붙는다.

즉 훌륭한 도구를 만들어내는 재능을 슬기라 한다면 이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게 과학이랄 수 있다.

우리 고유의 생활도구들에'겨레과학'이라는 새로운 명패달기-국립중앙과학관 과학기술사연구실 정동찬 실장이 펴는 작업이다.

정실장의 분석-“과학은 삶속에 녹아들어 문화의 한 요소로 계승되는 것입니다.겉으로 뚜렷하게 나타나진 않았지만 분명 우리고유의 기술도 체계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고고학을 전공한 그가 작업에 착수한 것은 지난 90년.서양 일변도의 과학연구풍토가 못마땅했기 때문이었다.한국전통기술학회등과 함께 고문헌을 뒤졌고 연구실 직원들과 전통공예촌등을 두루 돌았다.

그가 말하는'겨레과학'의 요체는 서양과학을 능가하는 합리성과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환경친화성이다.

개울이 발달한 우리나라의 독특한 자연환경을 이용해 발전시킨 물레방아.여덟번 이상의 열처리 과정을 거치면서 특유의 강도를 갖는 전통 낫.뛰어난 통기성과 정화능력을 자랑하는 흙에 잿물을 발라 구워낸 옹기.그는 최근까지 1백40여가지 우리의 전통생활도구에서 체계적 과학성을 도출해 냈다.

쇠락일로를 걷던 옻칠.한지.천연염색분야등을 되살리기 시작한 것도 그의 연구성과다.노동부.통상산업부에서 본격적인 산업화 추진에 나선 것. 지금와서 웬 전통기술의 복원이냐는 냉소도 없지 않다.하지만 어디 그게 시기를 따질 일일까.'훌륭한 응용과학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것을 분별있게 이용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떠올려 본다면 겨레과학의 복원작업이 뒤늦어진 것 역시 우리의 분별력을 탓할 수밖에 없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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