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아들이 마련한 어버이날 선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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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퇴근해 바쁘게 집에 들어서는 나를 향해 큰 아이가 죄스러운 얼굴로 “엄마,오늘 준비물을 사고 남은 돈에서 9백원을 썼는데 무엇을 샀는지 묻지 말아주세요”하고 말을 한다.

가끔 예상밖의 행동으로 나를 자주 놀라게 하는 아들이라 다소 걱정됐지만 그렇게 커다란 사고를 낸 얼굴표정은 아니어서 궁금하지만 며칠간 물어보는 것을 참기로 했다.

며칠동안 그 일을 잠시 잊고 있었는데 아들이 매일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옷도 벗지 않은채 살금살금 베란다로 나가서 수돗가를 흥건하게 적셔놓고 오는 것이 아닌가. 문득 지난번 일이 궁금해 물어보려다 검은 비닐봉지를 씌운 화분을 하나들고 부엌으로 가는 아이를 뒤쫓아 가보았다.

그 검은 화분 속에는 키작은 콩나물이 새근새근 숨을 쉬고 있었다.

여릿여릿한 노란 콩나물이 서로 키재기를 하듯 빼곡하게….“엄마,어버이날 선물로 준비한 것이에요.비록 양은 적지만 먼저 자란 것부터 드세요.콩나물을 키우고 싶어 콩나물콩을 사느라 9백원을 사용했어요.앞으로 제가 매일 이 콩나물을 키워 드릴게요”라고 말하면서 깨끗하게 씻은 콩나물을 바구니에 담아내는 것이었다.

어버이날이라고 아이들로부터 선물을 받기 시작한 것은 이제 한두해 밖에 되지 않았다.

그것도 사내아이라 별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고사리같은 작은 손으로 정성껏 키운 콩나물을 받으니 너무나 뜻밖의 커다란 선물이라 놀랐다.

그 귀한 콩나물을 넣고 끓인 매운탕을 저녁 식탁에 올리면서 어른인 나보다 먼저 어버이날을 준비해온 큰 아들이 대견스러웠고 한편으로 아들의 세심한 배려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지만 홀로 계신 친정 아버님께 전화라도 자주 드려야겠다.컴컴한 봉투속에 머리를 넣고 매일 물을 준 아이의 정성처럼. 조정숙〈서울광진구구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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