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悲運의 대통령들 교훈 잊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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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청문회에 나온 현직 대통령의 아들.그에게 쏟아진 의원들의 추궁과 질책.그리고 그의 눈물을 보는 느낌은 착잡하다.특히 되풀이되는 우리 역사의 멍울에 안타까움을 떨치기 어렵다.

어쩌면 이렇게도 역사의 교훈에 눈 멀 수가 있단 말인가.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소장의원시절 이승만(李承晩)대통령과 이기붕(李起鵬)부통령,양자 이강석(李康石)씨의 비참한 말로를 보았다.

야당의원으로 개헌반대투쟁을 벌이면서 아주 가까이서 목도했다.4.19는 그에게 권력의 가족 집중과 그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어떤 것인지를 생생하게 느낄 기회였다.

그 다음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의 비극이었다.집권세력의 부패와 전횡에 대해 숱하게 보고 들었다.朴대통령이 부하의 총에 쓰러지는 것을 목격하며 독재및 그 추종세력의 폐단을 절감할 수 있었다.전두환(全斗煥)대통령으로부터도 마찬가지다.집권자 처족(妻族)의 발호와'발령장없는 부통령'이라던 동생의 횡포를 역시 야당지도자로 투쟁하며 지켜봤다.

물론 金대통령 나름대로도 수십년간 체득한 교훈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었다.자계(自戒)의 언행도 보여주었다.친인척을 모아놓고 장제스(蔣介石)총통이 며느리를 벌한 일화를 강조하고,실세(實勢)란 표현을 싫어했다.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고,칼국수를 고집했다.

하지만 金대통령 역시 덫을 벗어나지는 못했다.아들에 대한'정치적 신임'이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고,결국 발목을 잡혔다.

어느 누구보다 가슴을 치는 회한(悔恨)이 金대통령의 흉중에 있을 것이다.청문회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아들을 보는 고통은 국민이 동의할 수 없는 비정상적 권력이 어느새 자신의 그늘에서 자랐고,그에 대한 논란으로 국정이 마비상태에 이르렀다는 점을 느꼈을 때의 참담함과 겹쳐 그를 견디기 어렵게 했을 것이다.하지만 이제 모든 것을 되돌리기에는 때가 너무 늦었다.김현철(金賢哲)씨의 金대통령에 대한'보좌'가 성공사례로 평가받기는 불가능해졌다.

아직 조사가 진행중이나'김현철케이스'는 우리 정치사에 부끄러운 기록으로 남겨지게 됐다.연말에 선출될 金대통령 후임자만은 부디 이같은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하는게 단지 기자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김교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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