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 유머 기성세대 껍데기권위 비웃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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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나도 신혼때는 자네처럼 줄이 선 바지만 입고 다녔다네.자네도 나이 들어봐.인생이란게 다 그런 거야.”

“그럼 부장님도 신혼여행가서 사모님께 다림질하는 법을 배웠나요.”

PC통신 농담코너에 나타난 세대차 시리즈의 하나다.

‘엥겔계수가 상당히 낮아진 시대에 자란 세대’인 신세대들은 여유로움 속에서 다양성·자유·현실에 무게를 두는 사고를 형성해 왔다.따라서 나는 너보다 더 살았다,더 높은 자리에 있다며 점잖게 한마디 하는 구세대들을 권위주의자로 간주하고 야유한다.

하지만 직장·학교등에서 조직생활을 해야하는 입장에서 권위주의와 사사건건 부딪칠 수도 없고,그렇다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를 버리기는 더욱 싫고-.해서 그들은 PC통신 농담코너를 해방구로 삼아 통신망을 통해 게릴라전을 전개하며 반권위주의 투쟁을 펼치고 있다.유머로 권위주의를 통렬히 비웃으며. 대표적인 것이 ‘선생님 시리즈’다.실력을 숭상하는 신세대들에게 실력부족·건망증에 시달리면서도 매질만은 아끼지 않는 일부 선생님들은 권위주의의 화신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영어가 중요시되면서 선생님이 숙제에 알파벳으로 점수를 매겼다.“선생님 B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건 배드(Bad)라는 뜻인데.” “그럼 G는 굿(Good)이고 그렇다면 BG는 뭡니까?” “자식들,베리 굿(Very Good)도 모르나.”

“복도가 왜 지저분한거냐,주번 나와”하면서 주번을 매질하고 청소를 시킨 선생님.한참을 두고 대학입시가 인생에 얼마나 중요하냐에 대해 훈시를 끝낸후 뭐 빠져라 청소를 하고 있는 주번을 보고 한 말씀-“이 중요한 시간에 공부않고 뭐 하는 거야,엎드려 뻗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칠판에 ‘참새 시리즈’라고 쓴 선생님.10년전에 날아가버린 그 새 얘기를 새삼 꺼내는 것이 우스워 입도 열기 전에 학생들이 마구 웃자 눈치 빠른 선생님이 판서내용을 고쳤다.‘참세 시리즈’라고.

떠든다는 이유로 한반 전체를 매타작한 선생님은 앞문으로 나갔다.정확히 10초후 뒷문이 스르륵 열리며 “이 반은 아주 조용하군.”

“어제 술한잔 해서 오늘 수업은 오락시간으로 하겠다.너 나와서 노래 불러.” “선생님, 백원짜리를 넣어야 동전 주입식 노래방 기계가 작동하죠.”

신세대에겐 아무 것도 아닌 컴퓨터에 제대로 적응도 못하면서 괜히 권위를 세워보려 아는 척하는 극소수 쉰세대의 행태도 유머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다.신세대라면 모르면 모른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디스켓을 복사하고 돌려줘야 하는데 복사기 종이가 없네.위층에 가서 A4 용지 좀 가져와.”

“김대리,앞으로 보고서는 디스켓에 써서 제출하라고 하니까 종이 라벨 좀 많이 구해놔.”

“이것봐 CD롬을 써야하는데 어떻게 하나.”“집어넣고 문 닫으세요” 그래서 부장님은 문으로 걸어가셨다.

신구세대가 가장 많이 충돌하는 직장의 야근에 대해서도 신세대들은 농담으로 대응한다.

“아니 요즘 신입사원들은-. 이사·부장이 일하는데 그냥 퇴근할 수 있는거야.” “죄송합니다.그냥 갈 수는 없죠.인사는 드려야죠. 이사님,부장님,수고하세요.”

한보사건이 터지자 정치권력을 비웃는 농담 시리즈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유머작두를 들고 등장했다.사회의 썩은 권위와 부정에 신세대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

“부전자전의 뜻은?” “ 아버지가 전하(殿下)면 나도 전하다.”

“칼국수만 얻어먹었는데도 재산이 불어난 까닭은?” “ 칼국수 속에 달걀 노른자위가 있었다.”

“비리 주인공들이 가장 싫어하는 방송프로그램은?” “ 포청천.”

“가장 미워하는 연예인?” “이경규(몰래카메라와 양심냉장고 )”

“4년에 걸친 임상실험 결과가 최근 부정적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매상이 크게 떨어진 칼국수집의 대응전략은?” “ DHA(두뇌영양물질)가 들어간 아인슈타인 칼국수 개발.”

그런 가운데 직장에서는 쉰세대나 낀세대들에게 이들의 농담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용,별명들이 붙여진다.

‘전태삼’이라는 별명으로 자신이 불리고 있음을 안 컴퓨터 회사 부장(43)은 “나중에 들으니 권위주의적 대통령 3명의 이름에서 한자씩 따온 것이어서 불쾌했지만 아이디어만은 괜찮았다”고 말했다.

정당한 권위는 인간사회의 유지에 필요한 것이지만 위선과 거드름으로 갑옷을 만들어 입은 권위주의와 거기서 파생된 부조리들은 어디에서고 비난의 대상이다.특히 신세대들은 이를 그냥 봐넘기지 않는다.권위주의.그 철지난 공식들을 아직도 되뇌는 사람들은 여지없이 ‘빠떼루’를 당한다.그러면서 신세대들도 건전한 의식을 가진 우리 사회의 책임있는 기둥으로 한걸음씩 커가고 있다.자,이젠 볼품없는 권위를 털자.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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