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통일의 反面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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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옛동독의 고색창연한 대학도시 예나의 호텔'슈바르처 베르'는 1522년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운동을 하면서 장기투숙했던 곳으로 유명하다.비스마르크와 또 다른 수많은 저명인사들도 이 호텔을 거쳐갔다.슈바르처 베르는 예나의 자랑이다.종

업원들도 서독수준으로 친절하다.

그러나 객실의 침대와 침구.커튼.형광등과 의자는 아직도 동독시절 가난의 때를 못벗고 있다.목욕탕의 비누와 화장지.타월에서도 부강한 독일 시장경제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이 호텔의 객실에는 아직도 동독이 살아있다.

아직도 東.西獨간 격차

예나에서 베를린으로 북상하는 철길 주변에는 비터펠트와 나움부르크같은 동독시절의 중요한 공장지대가 있다.그러나 공단 굴뚝에서는 연기가 안 난다.국영기업을 인수하는 기업이 없어 공장들이 문을 닫거나 일부만 가동되고 있다.

독일이 통일되고 7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 옛동독지역이 이런 사회주의체제의 짐을 완전히 벗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통일보다 어려운 것이 동.서독의 통합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70년대초부터 동.서독은 협력의 폭을 넓혀 왔다.동독사람들은 자본주의의 세균에 감염돼 남북한에 비해 동.서독간의 이질감(異質感)은 상당히 해소된 것으로 생각됐다.경제에서도 동독은 동구권의 모범생이어서 일단 통일이 되면 서독과의 격

차를 줄이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낙관했다.그러나 지금 독일사람들은 갈라져 살던 45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를 새삼 실감하고 있다.

경제통합의 주축은 동독시절 국영기업의 민영화다.민영화작업을 전담한 신탁청은 90년부터 94년말까지 존속하면서 1만2천개 이상의 기업을 민영화하고 3천7백개 이상의 기업을 폐쇄하는 작업을 했다.외형적으로는 동독경제의 시장경제전환이

거의 순조롭게 돼 간다.그러나 내용을 들여다 보면 사정은 다르다.민영화된 기업 대부분이 경영난을 겪고 있다.브레멘 불칸같은 대형 조선소는 민영화후 파산했다.

90년 경제통합때의 결정에 따라 민영화된 기업의 임금수준은 서독의 같은 업종 임금의 50%로 출발해 96년까지 1백%로 맞추도록 돼 있다.그러나 96년 기준 동독지역 임금은 서독의 72.5%,생산성은 서독의 54.4%다.생산성이

통일전의 35%에 비하면 크게 성장했지만 목표미달이다.생산성을 고려하면 임금은 낮아서가 아니라 높아서 문제다.거기다 동독사람 5명에 1명은 완전실직이다.경제통합이 이러니 사회.심리적 통합은 요원하다.

동독지역의 경제개혁에 불만인 사람들은 90년 서독정부가 동.서독의 마르크화를 1대1로 교환한 조치가 높은 임금과 인플레를 유발하고 그것이 경쟁력을 약화시켜 동독경제를 파산시켰다고 비판한다.

그 당시 동독 마르크는 서독 외환시장에서 1대8로 교환되고 암시장 환율은 1대7이었으니 이런 비판은 근거가 있어 보인다.그러나 그때 평균임금이 서독 3천5백마르크에 동독 1천마르크였으니 1대2 또는 1대3의 환율을 채택했다면 동독

근로자들의 대이동으로 서독의 노동시장은 큰 혼란을 맞았을 것이다.1대1 교환은 불가피한 정치적 선택이었다.

느리지만 옳은 방향 접근

통일후 5년안에 동독의 생활수준을 서독 수준으로 끌어 올리겠다고 한 헬무트 콜 총리의 약속은 지켜질 수 없는 장미빛 정치공약이었다.그러나 동.서독의 통합은 걸음이 더딜뿐 가야할 방향으로 가고 있다.게르만 특유의 저력이 작동하고 있

다.21세기 중반에는'유럽의 독일'자리에'독일의 유럽'이 들어설지도 모른다.

독일통일보다는 그 후의 통합과정이 더 우리의 반면교사(反面敎師)다.한국과 독일의 사정이 같지 않다고 해도 마찬가지다.남북한 통화의 교환비율,북한내 부동산에 대한 개인들의 재산권 처리,국영기업의 민영화방식 등 독일을 거울삼아 숙제로

밤샘할 일이 참으로 많다. (베를린에서.김영희국제문제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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