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개헌, 정략적 접근 말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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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치권에서 내각제개헌 문제가 갑자기 무성하게 제기되고 있다.두 야당이 그동안 후보단일화 문제를 놓고 그 고리로 내각제를 단속(斷續)적으로 제기해 왔으나 큰 주목을 끌지 못했다.그러나 한보사태를 계기로 대통령제의 권력집중폐해를 명분

으로 여당 일부 대선주자와 국회의장이 내각제를 거론하고 나서 개헌문제가 점차 현실적 이슈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정치권의 움직임이 임기말이 되면 으레 한번씩 나오는 일과성(一過性)이슈가 될지,아니면 점차 힘을 받아 태풍의 눈으로 변할지 아직은 미지수다.

우리는 지금 제기되고 있는 내각제에 대한 찬반을 떠나 개헌론을 제기하고 있는 의도와 시기가 석연치 않음을 지적하고자 한다.우선 개헌을 제기하는 측의 면면을 보면 정략적인 냄새가 물씬 난다는 점이다.야당의 경우,특히 국민회의는 내각

제 개헌이 후보단일화를 위한 조건이었지 그 자체에 매력을 느낀 것이 아니었다.여당의 경우는 국민지지도가 아직 낮은 일부 대선주자 혹은 계파가 권력독점식 대통령제보다 분점식 내각제가 자기 혹은 자파에 유리하리라는 계산에서 이를 내세염?있다는 인상이 짙다.이들이 제시하는 내각제 필요성들도 따지고 보면 이해관계를 분식(粉飾)하기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시기적으로도 개헌문제를 진지하게 검토.논의하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대선을 불과 9개월 남겨놓고 있는 상황에서 제도 자체를 바꾸자는 주장은 정치적 혼란만 불러오지 않겠는가.지금 경제가 어렵고,나라가 방향을 잃고 흘러간다는 걱정이

태산같은데 여기에다 개헌문제까지 겹친다면 상황은 수습할 수 없는 지경으로 번질지 모른다.찬반을 둘러싼 정치권의 격렬한 대립은 물론,장외투쟁 가능성 등 온 나라가 개헌소용돌이에 빠져들 위험이 눈에 선하다.

내각제든,대통령제든,이원(二元)정부제든 모두 장단점이 있다.권력구조 문제는 이런 과도기에 정치적 이해로 급하게 어느 방향으로 몰아가려 하기보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진지한 검토를 거쳐 국민적 공감 속에서 결정돼야 할 과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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