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외국인 노동자 차별하고 따돌리는 인권 후진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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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8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이주 노동자의 날’이다. 노동력이 국경 없이 넘나드는 세계화의 시대에 각국이 이주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권리를 보호할 것을 촉구하는 기념일이다. 하지만 때맞춰 이날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이주 노동자 단속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아직 우리나라는 인권 후진국에 머물러 있다. 인권위가 4개 외국인 보호시설 내 이주 노동자들을 설문 조사했더니 신분도 밝히지 않은 단속반원들에게 무작정 연행되거나, 이유 없이 구금되는 등 갖가지 인권 침해를 당했다고 한다. 여성의 경우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요구를 묵살당하고 성희롱에 시달리기도 했다. 불법 체류 노동자들을 단속할 때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최소한의 인권은 보호해야 한다는 국제 기준이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갈수록 늘어 10월 말 현재 117만여 명에 달한다. 불법 체류자 21만여 명을 포함한 숫자다. 이들은 이주 노동자로, 한국인과 결혼한 배우자로 사회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여건은 아직 다문화 사회에 진입할 만큼 성숙되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주 노동자에 대한 불법적 단속이나 부당노동 행위, 외국인 배우자와 그들의 자녀가 겪고 있는 가정 폭력과 집단 따돌림 등의 문제 때문에 지난해 8월 유엔 인권차별철폐위원회로부터 시정 권고를 받기도 했다. 국제 사회로부터 외국인 차별 국가라는 불명예스러운 낙인이 찍혀 있는 셈이다.

오명을 벗는 길은 뿌리 깊은 배타주의, 순혈주의를 깨뜨리고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그들을 적극적으로 감싸 안는 것뿐이다. 그런 차원에서 국내 최대 외국인 거주지로 꼽히는 경기도 안산시가 최근 사상 첫 외국인 인권 조례를 만들어 적극적인 권리 보호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건 바람직한 일이다. 더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안산시의 선례를 따르게 되길 바란다. 우리의 이웃인 외국인들을 언제까지나 국외자 취급하며 인권 사각지대에 방치할 순 없는 노릇이다. 더 이상 차이를 이유로 차별이 벌어져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