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90년 전통 금은방 '경화당'도 부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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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서울 명동의 메트로미도파에서 조선호텔쪽으로 가다보면 대형 금은방'경화당(京華堂)'의 5층짜리 건물셔터가 굳게 내려져 있다.경화당 뒤쪽으로 붙어있는 ㈜코리아다이아몬드 건물셔터도 마찬가지.부도가 났기 때문이다.

경화당은 일제시대 이래 9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최고(最古)의 금은방이고,코리아다이아몬드는 국내 최대의 다이아몬드 가공업체.두 업체는 4대째 종로.명동을 무대로 금은방을 가업으로 잇고 있는 박옥순(朴玉順.67)씨 모자가 경

영을 맡아온 업체로 박정희(朴正熙)대통령시절에는 외국귀빈의 방한때 증정하는 행운의 열쇠를 제작,납품했다.지난해초에는 S그룹에서 북한의 최고위층 인사에게 전달할 금으로 된 명함을 제작해 주기도 한 유명업체다.

국내 귀금속업계에서 최고.최대인 이들 업체는 지난 7일 신한은행 명동지점에서 1억원을 부도낸 것을 비롯,지금까지 확인된 부도금액만도 2백억원대에 이른다.이때문에 명동인근의 사채시장까지 타격을 받게 되는등 업계파장도 적지않다.하지만

귀금속업계 관계자들은 그보다도 경화당이 무너진 사실 자체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경화당은 그동안 국내 귀금속시장에서'정금사'와 함께'금은방사관학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70년대초에는 아예'경화금은보석학원'을 설립해 국내의 세공기술자 양성에 힘써 현재도 내로라하는 대형업체는 거의가 이곳 출신이라는게 관련업계의 설명.경화당이 지난 75년 설립한 코리아다이아몬드는 국내 다이아몬드가공산업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크다.

당시 국내에서 거래되는 다이아몬드는 전량이 밀수로 유통될 정도였으나 이리 귀금속보석단지에 공장을 차려 원석을 정식수입,가공.판매한 1호업체로 기록되고 있다.경화당이 금은세공기술자를 배출한 것과 마찬가지로 코리아다이아몬드는 연마기술

자를 교육,배출함으로써 다이아몬드 가공산업의 기틀을 잡아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 연마기술생은 1기생부터 9기생까지 총 4백여명을 길러내 현재도 이곳 출신들이 국내 다이아몬드 유통물량의 90%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상태.경화당과 코리아다이아몬드는 그러나 80년대 중반이후 세공기술자에 대한 인건비상승.세금부담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됐다.

그래서 87년 아예 연술자를 교육,배출함으로써 다이아몬드 가공산업의 기틀을 잡아놓았다는 평가다.

당시 연마기술생은 1기생부터 9기생까지 총 4백여명을 길러내 현재도 이분야의 90%이상을 이곳 출신들이 다이아몬드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태.

경화당과 코리아다이아몬드는 그러나 80년대 중반이후 세공기술자에 대한 인건비상승.세금부담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됐다.

그래서 87년 아예 연마공장을 태국으로 이전하는등 사업구조조정에 나섰으나 재미를 보지못했다.게다가 롯데호텔내 매장과 면세점사업이 어려움을 겪은데다 일본지사와 스리랑카의 제2다이아몬드 연마공장등의 사업부진으로 적자가 불어나게 됐다.

경화당과 코리아다이아몬드는 적자가 불어나는데도 불구하고 밀수품 유통에 손대지않고 정식으로 세관을 통관한 정상제품으로 승부를 고집함으로써 그간에도 끊임없이 부도위기를 맞았으나 잘 극복했다.그러나 최근 불경기까지 겹쳐 다이아몬드는 물론

금.은까지 잘 팔리지 않아 더이상 못견디고 쓰러진 것이다.

귀금속업계 관계자들은 경화당과 코리아다이아몬드의 부도사실과 관련,“국내에서 유통되는 다이아몬드의 80%이상이 밀수품인 실정에서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사업하는 업체가 진작 쓰러지지않고 견딘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시래 기자〉

<사진설명>

국내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던 금은방인 경화당이 부도가 난 가운데 서울명동의 매장이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다. 〈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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