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대만의 本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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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문제는 세종로에 있는데 신촌가서 두리번거린다고 해법(解法)이나올리 없다.대만의 핵폐기물 문제가 이렇게 시간을 오래 끄는 것은 정부가 문제발생원인과 본질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하지 않기때문이다. 사태의 본질은 무엇인가.대만의 외교보복이다.당장은 대만이 지난 5년동안 한국한테서 받았다고 생각하는 수모에 대한 앙갚음이고,길게는 한국이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 없는 강력한.북한카드'로 대만에 대한 한국의 자세를 고쳐놓자는 것이다 . 대만을 돌아앉힌 사정을 먼저 보자.한국과 중국이 외교관계수립에 합의한 뒤 중국은 성의를 다해 북한의 양해를 구했다.국가주석 양상쿤(楊尙昆)은 92년 4월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金日成)에게 직접 중국의 한반도정책이 바뀌지 않을 수 없는 사정을 설명했다.수교교섭을 시작한 뒤에는 楊의 동생이고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서기장인 양바이빙(楊白氷)이 평양으로 가 북한을 달랬다. 중국은 그해 7월29일 한국과 외교관계수립에 관한 의정서에 서명하고도 발표를 8월24일로 늦추고,외교부장 첸치천(錢其 )이 몰래 평양으로 날아가 중국으로선 대만이 국제적인 승인을늘려가는데 대항하지 않을 수 없으니 북한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몸을 낮춰 사정했다.그렇게 해서 북한은 형제국의 한국승인이라는쓴약을 말없이 삼켰다. 한국은 대만을 어떻게 대접했는가.노태우(盧泰愚)대통령이 직접나서 한국은 새친구 사귀려고 옛친구를 버리지 않겠다고 연막을 쳤다.8월10일 한.중수교 정보를 입수한 대만의 문의에도 아니라고만 했다.대만에 단교를 통고한 것은 그로부터 8일 뒤였다. 대만총통의 비서실장이 달려와 한국이 중국과 수교하되 대만과의외교관계는 유지해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한국은 그런 두개의 중국정책을 채택할 여유있는 입장에 있지 않았다.총통의 특사는 그때 대만은 북한 끌어안기로 보복하겠다고 경고하고 떠났다. 대만이 한국에 대해 극도의 배신감에 절치부심(切齒腐心)하는 것은 대만과 단교한 것 자체때문이 아니라 대만과 단교하는 과정과 단교후에 한국이 취한 신의(信義)없는 태도 때문이다.수교협상에는 보안(保安)이 필요했을 것이다.그렇다면 단 교 후에라도대만달래기의 물밑외교를 벌이고 실질관계의 수준을 높였어야 했다. 그러나 한국은 대만과의 정부간 접촉을 과장급으로 억제해 왔다.미국은 중국의 항의를 무릅쓰고 각료급 접촉을 하고 있다.한국에서 겨우 차관보급이 대만을 비공식 방문한 것은 96년 10월이 처음이다.대만의 반한(反韓)감정이 위험수위를 넘고 있을 때다. 대만이 북한과 관계를 트겠다고 위협신호를 보내도 한국은크게 신경쓰지 않았다.중국이 큰 기침 한번 해주면 북한쪽에서 후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핵폐기물거래라는 극약처방을 만나고서야허둥대지만 그동안 대만달래기의 축적이 없으니 문제해 결이 어렵다. 대만의 핵쓰레기가 북한에 가는 것을 막는 것은 지상명령이다.대만도 국제적인 고립을 벗어나는데 총력외교를 벌이고 있다.그런 대만이 핵쓰레기 수출같은 부도덕한 행위로 세계여론의 비난을 받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다. 북한의 대만접근에는 더 큰 한계가 있다.북한이 핵폐기물수입으로 대만과 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중국이 결단코 용납하지 않을 2개의 중국정책의 첫걸음이다.그래서 대만도 처음부터 퇴로(退路)를 염두에 두고 일을 추진했을 것이다.대만판 벼 랑외교다. 해법의 핵심은 세계여론을 업고 미국과 중국이 각각 대만과 북한을 설득하도록 외교공조(共助)를 강화하는 것이다.그러나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다.대만에 실질관계의 수준을 높이겠다는 물밑약속을 해야 한다.예상되는 중국의 항의는 미국같이 설득으로 푸는것이 외교능력이다.한국내의 대만인맥 활용도 기여하는바 적지않을것이다. (국제문제대기자) 金永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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